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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 신숙주
도현종
- 1354
- 2019-09-25 02:55:20
계유정난(癸酉政亂)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담한 피(肅淸)의 단죄가 현실의 숙명이고, 꿈틀거리는 핏줄이 실낱같은 요원한 바램이었다면, 감리교회 그 회한과 화해와 용서의 정점은 누구이며 어느 시점이어야 하는가?
새로운 시대의 권력과 회한에 대해 공통분모를 대입한다는 명분으로 바른 흐름을 손질해야한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선인들의 기개와 절개 앞에서 헤아려 보건대 선명하고도 절제된 이미지와 주제의 전달은 어디인가? 함축되고 응축된 메시지와 미학이 감리교회 공동체에 극명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유희들로부터 좀더 깊고 넓은 성령 언어의 조우를 갈구하였기에 말이다.
하나님 안에서 鼓腹擊壤(고복격양)을 누렸다고 착각하고 향락과, 권력과, 지위를 얻었다고 교만하여 배 두드리며 골프는 치지만 백성들은 울고있는것이다. 분명 잘못된 길이다.
1.감리교회와
서기 1462년 세조 8년, 단종을 폐위한 세조는 왕실의 위험이 될 외척과 공신들을 제거하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거짓으로 양위를 천명한다. 이에 영의정 정창손이 옳은 결정이라며 양위를 권하나 신하들의 상소를 핑계삼아 세조는 장창손을 귀양을 보낸다.
2.감리교회와
서기1455년 단종 4년, 숙부인 세조(수양대군)에게 군국(軍國)의 모든 권력을 장악당한 단종은 세조에게 양위(자리를 물려줌)를 천명한다. 이때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 유응부)이 나타나 단종의 양위를 만류하고 서기1456년 세조 1년,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국문에 처해진다.
3.감리교회와
사육신 중 박팽년의 박팽년의 아들 박순의 종(從)이 나타나, 마님(박중림의 손부)께서 해산기운이 있사온데, 자신에게 지금 막 태어난 자식이 있으니 맞바꾸어 훗날 종가의 대를 이으면 안될까 하고 여쭌다.반역죄로 처형을 당하는 사육신에게 신숙수는 그들의 3대를 멸족한다교서를 읽어내리고 사육신이 처형을 당한후, 귀신의 소리를 자주 듣는 세조의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 박중림과 손부는 마침내 출산을 하게 되는데, 마침 종이 나타나 손부가 아들을 낳은 후 혼절한 틈을 타 자신의 아들과 바꿔치기를 하고, 그 충정은 박팽년 종가의 대를 잇게 한다.
4.감리교회와
신숙주는, 단종이 살아있음으로 해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무리가 창궐하여 많은 목숨이 죽어 나가니, 즉시 단종에게 사약을 하사 하라고 하나 세조는 단종을 가만 두라며 거짓으로 신숙주에게 호통한다. 세조의 실성한 모습에 신숙주가 애통하는 세조의 실성의 원인을 단종에게서 찾으니, 마침내 멀리 귀양가 있으나 아직 힘을 발휘하고 있는 단종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5.감리교회와
서기1457년 세조 3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인해,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된 단종에게, 금부도사 왕방연이 찾아와 단종에게 사약을 하사한다. 단종은 사약 앞에서 두려워하며 사약을 거절하나 왕방연에 의해 끝내 사약을 마시고 죽게된다. 왕방연은 신숙주를 대면한다. 신숙주는 왕방연에게 이르기를 상왕 단종의 안녕하심을 일부러 묻는다. 시대가 어수선한 만큼 신숙주는 왕방연의 마음을 떠 본다. 왕방연이 이를 회피하자, 이때 신숙주는 조신들의 명단을 보여주며 이자들의 3대가 멸족하는 것을 보기 싫다면 상왕 단종의 복위를 음모하는 이들을 세조에게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 단종의 죽음만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겠노라 하지만 왕방연이 실성한듯 횡설수설한다. 신숙주는 왕방연을 다그치니 단종을 이미 죽였다고 왕방연이 말한다. 내심 단종의 죽임이 다행이었던 신숙주였으나 백성들이 무서워진 이유로 왕방연을 죽이고, 상왕을 죽인 것을 거짓으로 수습하기 위해 신숙주는 강원도 영월로 향한다.
6.감리교회와
감각적 두뇌, 꿈의 하향 조정(권력 향락 부귀), 막강한 자금력에 이어 혼맥의 형성이라는 요소도 한명회의 장수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서 신숙주와 통함이 존재한다. 신숙주가 죽지않은 이유다. 한명회는 딸 하나를 수양대군의 차남인 예종에게 시집보내고 또 다른 딸을 수양대군의 손자(장남의 차남)인 성종에게 시집보냈다. 무슨 이런 콩가루 같은 족보가 다 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두운 눈물을 흘리지말자.....감독회장, 감독, 감리사가 전부가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