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의 영성(9. 29 주일 낮 설교 요약)

오세영
  • 1460
  • 2019-10-01 16:20:08
요11:4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주님께서 짧게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오병이어의 역사를 베풀어 풍성한 떡과 물고기를 보며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삼킬 듯 요동치던 갈릴리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시며 기도하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썩어 냄새가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막 나사로를 불러내기 전, 돌문을 옮겨 놓으라 하신 다음에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오라버니가 살아나길 간절히 바랬을 마르다와 마리아조차도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려고 돌문을 옮겨 놓으라 하신 주님을 만류했던 것입니다.
마르다 마리아를 비롯하여 나사로 무덤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얼마나 긴장이 되었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이렇게도 무모한 듯한 일이 또 있었을 까요!
이렇듯 긴장되고 엄중하기 짝이 없는 긴박한 시간임이 틀림없지만 주님의 기도는 너무도 여유있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리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아버지가 이미 기도를 들으신 것으로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무덤은 나사로의 시신을 가두고 있고 돌문이 열려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인데도 말입니다.

영성의 세계는 4차원의 세계 입니다.
4차원은 영적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셨던 주님은 영성의 세계를 우리에게 언제나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성을 체득한 베드로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이에게 담대하게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던 여 제자 다비다가 죽음으로 욥바 온 동네 사람을 슬픔에 잠기게 하였을 때 울고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기도 한 후 “다비다야 일어나라”(행9:40) 하니 다비다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당시의 제자들 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기독교 역사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4차원의 세계는 3차원의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된 이들마다 보통 사람들의 원리인 3차원을 넘어서게 됩니다.
4차원인 영성은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성을 말하면서 자칫 3차원의 영성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 아멘을 풍성하게 하고 할렐루야로 인사한다든가 뜨겁게 기도생활하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영성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영성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관상기도를 배우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즉시 시행하리라“ 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조금도 두려움 없이 기도하셨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가 성령 안에서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 있음을 알고 확신되는 것이 영성의 본질입니다.
그러한 이들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형통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고백은 주님과 하나 되었던 영성의 결과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염려케 하는 일들이 하루가 시작되면 그것들도 함께 시작됩니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인간지사인지라 공황증 우울증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영성은 4차원이기에 3차원의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초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3차원에 머무는 수준으로는 이해 할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어라”,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또한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러한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4차원의 영성에서만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행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수준에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드렸던 그 짧은 기도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본 받아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보이신 기도대로 담대해야 하고 평안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영성의 세계에서 이탈된 것입니다.
주님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죽음 질병 위협 곤고 염려 등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영성의 세계는 안식과 평안을 노래하게 되는 것이며 다스리고 정복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이 4차원의 영성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기에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주님과 하나 되는데 근본적 걸림돌이 되는 죄를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죄로 부터 승리하기 위해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히12:4)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 다면 4차원의 영성을 사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성의 세계는 4차원 입니다.
3차원적인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엔 너무도 허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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