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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설교: 이삭과 리브가(10.6일 주일낮 설교 요약)
오세영
- 1845
- 2019-10-08 08:26:27
창세기24장에 소개되고 있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하여 신부를 구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의 신부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맹세를 시키며 이삭의 신부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구하지 말고 자신의 고향 친족에게 가서 데려 올 것을 명하였습니다. 결국 그 종은 하란 땅으로 갔고 거기서 라반의 딸 리브가를 데려왔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각각 누구를 상징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고 이삭은 그리스도를 그리고 리브가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찾지 않습니다.
이삭의 아내를 고향땅 친족 중에서 찾는 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는 세상 가운데 있지 않고 부름 받은 교회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혈통이 다르기에 이삭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교회가 아브라함이 찾는 고향이요 친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교회 공동체 안에 부름 받았음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로 부름 받은 이들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족보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는 명문대가가 있었고 귀족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들과 함께 혼인을 할 수 있을 만큼 명성과 재물이 있는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아내를 그들 가운데 찾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단지 고향땅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 그 하나만이 조건이었고 그 며느리를 얻기 위해 2천리 길을 종으로 하여금 다녀오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육신의 눈에 보기에 존귀한자 부강한자들이 많이 있고 잘나고 뛰어난 이들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찾는 교회 안에서 신부를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며 기도하고 때론 금식도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오직 부름 받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자리로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가 내게 보내주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요6:37)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가나안 땅의 모든 존귀한 혼인 자리를 마다하고 오직 고향 땅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 종을 보낸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분명한 뜻과 섭리를 알 수 있습니다.
리브가가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친족 중에서도이삭의 신부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되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친족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첫 번째는 두말 할 것 없이 충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아브라함이 보낸 그 종을 믿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리브가가 통과해야 하는 이 두 번째는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인의 몸으로 먼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이며 과연 아브라함이 보낸 사람인지 믿을 수 있어야 하며, 부모형제와 영영 이별하는 길이며, 정든 고향 땅을 등져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리브가가 신랑을 찾아 나서는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이삭에게로 떠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종들을 대동하였고 은금 패물과 옷가지를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태도는 너무도 진지했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부모와 리브가도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낸 종은 성령님이라고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늘 아버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셨는데 그 성령님은 주 예수님을 증거하고 보여 주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진리를 알게 하실 것이고 가르치며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요14:26) 과연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기에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그리고 자신을 이삭의 아내로 맞이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확신 할 수 있었던 증거들을 충분히 보았던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하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그 아들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성령님은 증거 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은 하나님과 그 아들에 대한 모든 것을 생생히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평생에 경험하는 고난과 축복 그리고 연단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하여 성령은 우리의 신랑 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리브가가 보았고 느꼈던 것보다도 더 분명하고 뛰어난 증거들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 종의 행차를 보며 믿음이 갔듯이 우리가 성령 안에서 보았고 체험했고 알게 된 진리는 리브가와 족히 비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아들까지 주신 이가 또 무엇을 주지 않겠느냐”(롬8:32) 하심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을 허락하시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에 주저 할 필요가 없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를 평생 설득하시며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반응해야 합니다.
리브가가 대답했던 것처럼 우리도 분명한 결단과 함께 주님의 신부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리브가는 “네가 이들을 따르겠느냐” 하는 질문을 받고 “예, 가겠나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리브가는 그 대답과 함께 부모형제와 이별해야 했고 정든 산천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 말은 신랑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이들마다 리브가처럼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신랑 되신 주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합니다.
세상과 주님 사이에 있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며 이것이 우상숭배이며 간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하신 말씀은 이와 같은 이치에서 설명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결단코 주님을 따르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 했고 야곱도 집을 떠났고 요셉도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정을 떠나 제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리브가가 종을 따라 신랑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므로 그에 합당한 새 생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브가에게 그들은 축복하였습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 축복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리브가가 받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천만인의 어미가 되고 원수의 성문을 얻게 되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길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