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안인철 (2019.9.15 갈산교회주보에 실은 글)

안인철
  • 2262
  • 2019-10-05 16:58:34
조국과 안인철
내가 그러니 남도 그런 줄...


75년에 당진 호서고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식날 밴드부의 연주소리에 반해 자발로 찾아가서 밴드부원이 됐고 클라리넷을 맡았습니다. 1학년 겨울방학, 열흘가량 학교에 나가 연습을 해야 했고 학교에서는 통학증이라는 것을 만들어줬습니다. 그걸 내밀면 평상시처럼 반값할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밴드부 연습일정이 끝나고 며칠 뒤 아버지와 함께 당진 읍내에 나가게 되었는데 남자 조수가 차비를 받으러 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통학증을 내밀었습니다. 내가 내민 통학증은 위조가 되어있었습니다. 밴드부 연습이 끝나 통학증이 더 이상 효력이 없었지만 그냥 버리기기 아까웠습니다. 11일까지로 되어있는 날짜를 고쳐 17일로 위조한 통학증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등학생 안인철은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매우 보수적인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통학증을 위조했습니다. 특별히 죄의식 같은 것은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통학증을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냥’ 해 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학증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 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고작해야 나보다 두어살 위일 것 같은 그 남자 조수는 큰 소리로
“야! 너 이거 날짜 고쳤지.. 고친 티가 다 나는데...”
나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삼봉교회 목사인 것을 다 아는 승객들 앞에서 아버지는 망신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 조수는 목소리라도 작게하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위조를 지적하는 바람에 그냥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습니다.)
40년도 훨씬 지났지만 그 때의 그 화끈거림은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목사로 살면서 그때의 그 경험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회초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그 때의 나를 생각합니다.

조국이라는 꽤 괜찮은 인재가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됐습니다. 여러가지로 종합해볼 때 그는 법무부장관에 적격일 듯 싶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이승만 정권과 차별하기 위해) 키운 검찰이라는 개가 언젠가부터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워낙 버릇을 잘못 들여 논 터라 아무도 검찰 목에 방울을 달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자신도 검찰에 죽음에 이르는 모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손사래를 쳤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못 다한 검찰개혁(사법개혁)이었을 것입니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검찰개혁이 중심인 사법개혁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점점 더 해갔을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대로가 좋사오니..”를 외치는 검찰이나 보수세력 등 계파별 반대를 어떻게 넘어서느냐 였습니다. 지난 한 달동안 조국 후보자에 대한 반대의지는 정말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정말 상상외였습니다. 끔찍하게 파고 또 파는 것을 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뉴스나 기사를 보면 44년 전의 내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어 떠올랐습니다. 내가 조국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니 “저 사람도 혹시...”하는 마음이 자꾸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언론이 제기한 문제들이 하나 둘씩 오보이거나 거짓임이 들어나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면서 “그럼 그렇지...” 하는 웃픈(우습고도 슬픈) 일들이 지난 한달 동안 내게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검찰이 조국 부인을 엉뚱한 죄목을 붙여 기소했지만 그 점도 44년 전 안인철이 벌인 일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어쩌면 조국이라는 사람은 목사인 저보다도 더 원칙적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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