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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훌륭한 어머니 10분을 본받읍시다/10월20일주/강단초록.
박영규
- 2894
- 2019-10-16 02:05:05
blog.naver.com/amenpark
설교-훌륭한 어머니 10분을 본받읍시다.
성경-누가복음1:26-38절
오늘은 훌륭한 어머니 10분을 소개해 드리며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창27-31장)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지혜롭고 신앙이 강한 여인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장자 권 문제로 에서가 야곱을 해치려하자 야곱을 친정으로 피신케 해서 야곱이 외삼촌의 딸과 결혼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인도했습니다.
2.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사무엘 상 1장)
한나는 [브닌나]의 핍박에도 하나님께 기도드려 사무엘을 낳았고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앙으로 잘 인도했으며 사울과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3.마리아(본문성경 누가복음1:38절)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고 예수가 큰 자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를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며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니 천사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는 수태고지를 듣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목숨 걸고 메시아의 잉태를 받아들였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는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메시아의 때를 앞당기는 역할을 해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시도록 예수님을 움직였습니다.
4.잠언31장의 현숙한 여인(어머니)
현숙한 여인은 자녀들이 어머니께 감사를 했으며 남편은 칭찬을 했습니다(잠31:28)
5.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성 어거스틴은(AD354-430) 당시 평균 연령을 넘어 장수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교육과 동시에 천재로서 세상의 지목을 받았다. 오늘날 아프리카 튀니지의 타카스테에서 태어났으며 당시는 로마 전성기로 유럽과 북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아시아가 한 나라로 묶여 활동하던 시대였다. 그의 청년기 또한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방탕하고 자만에 빠져 생활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세상의 진리 탐구에 목말라 하였다.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모든 철학을 섭렵하고 성인들을 탐구해 보았으며, 마니교(사물숭배)에 빠지기도 했으며, 점성술에 심취해 모든 것을 운명으로 판가름 하려고도 하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깊은 기독교 신앙의 인내와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타카스테에서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를 거쳐 고향에서 한 지역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생을 마감 했다/출처-작가 황민규 네이버 블로그 참고.
어거스틴의 참회록 9권에서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나타난다. 하나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이며 하나는 그가 결국 33세에 세례를 받은 일이다. 9권의 서두에서 그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는 시편을 알아가기 시작하며 그것에서 많은 감명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읽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서술하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으로 인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참고.
6.웨슬리 어머니 수산나
김진두 교수의 웨슬리의 뿌리 책을 읽고서 웨슬리목사님의 어머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김진두 교수의 저서 존 웨슬리의 생애를 읽고 느낀 점입니다 /중세부터 끊이지 않고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문을 이어 내려온 웨슬리 가문은 믿음의 명문가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선조들에게서 웨슬리 형제가 나왔다는 사실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선조들과 부모인 사무엘과 수산나를 통해 신앙의 영향을 받아 존 웨슬리 형제가 위대한 인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교육에 의한 것이라는 존 웨슬리의 말이 사실로 입증되었으며 어머니 수산나가 메도디즘의 어머니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웨슬리의 선조들은 5세기 초 영국에 정착한 색슨족이라고 하며 원래 웨슬리 선조의 고향은 영국 남부의 서섹스 주였는데 1066년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16세 이상 남자는 모두 전사하여 이 때 웨슬리가의 한 과부가 아들딸들을 데리고 서머세트 주 지방의 작은 마을로 도망하여 숨어 지내며 자녀들을 키웠는데 그 마을 이름이 웰스웨인데 이 마을 이름이 웨슬리가 이름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1539년부터 웰슬리라고 부르다가 웨슬 리가 된 것입니다. 웨슬리의 선조들은 중세부터 존경받는 기사 가문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고조부 허버트 경은 경건과 학식과 덕망으로 당대에 존경 받는 인물이었으며 증조부 바톨로뮤는 국교회 성직자요 의사였으며 조부 존은 옥스퍼드를 나왔으며 성직자로 개혁자로 비국교도 목사였으며 부친 사무엘 웨슬리는 옥스퍼드대를 나와 성직자, 신학자, 시인, 국교회 목사였으며 존 웨슬리도 옥스퍼드를 나와 국교회 성직자 신학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 , 메도디즘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외조부 사무엘 아네슬리는 청교도의 대부였습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아네슬리는 1669년 1월 20일 런던에서 태어낫는데 아버지가 두 번 결혼하였는데 첫 부인이 아기를 낳다가 죽어 두 번째 결혼하여 두 번째 부인이 2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수산나는 막내로 태어낫습니다. 수산나가 19명의 아이를 낳은 것은 어머니의 다산의 실력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아네슬리가 24명 만 낳았다면 수산나도 존 웨슬리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산나는 책을 많이 읽었으며 13세에 비국교도에서 국교도가 되었으며 수산나는 외모와 내면이 모두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1688년 사무엘과 결혼하여 19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청교도 신앙으로 자녀들을 훈련 시켰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엄격하게 규칙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가족 기도회를 드렸으며 자녀들과 상담을 하고 편지로 자녀들과 소통하였습니다. 수산나는 자녀들에게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가르치고 하루에 세 번 자신을 성찰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수산나는 여성 최초의 설교가라 불릴 정도로 설교를 잘 하였으며 존 웨슬리의 신성회를 위해 웨슬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편지로 격려하였습니다.
수산나는 1735년 65세에 과부가 되어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살다가 1742년 7월 23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742년 8월1일 존 웨슬리는 어머니 장례식을 직접 주례하며 요한 계시록 20:11-12절 말씀을 설교하였습니다. 수산나는 진정한 청교도의 딸이었으며 그리고 진정한 메도디즘의 어머니였습니다.
7.아브라함 링컨
"링컨과 성경과 어머니"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은 다음같이 말했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 믿는다.
나는 하나님의 선물인 성경의 보화를 캐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묵상한다. 이 성경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값진 보화들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속에서 링컨이 성경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링컨은 학교교육을 불과 일 년 남짓 받았다.
그 일 년 동안에 읽기와 쓰기를 겨우 익힐 정도였다.
그가 책 읽는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통하여서였다.
그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부터 유언과 함께 물려받은 성경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성경을 물려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아들아! 이 성경책은 나의 부모님께 받은 책이다.
내가 여러 번 읽어 많이 낡았지만 우리 집의 값진 보배다.
내가 너에게 100에이커(12만평)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너는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다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다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훗날 링컨은 어머니를 회상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의 오늘, 나의 희망, 나의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다.”
링컨의 일대기를 보면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가 역전 한 듯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을 이 글을 통해서 축약된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훌륭한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차한 농가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이라고는 1년도 못 받고 너무나 가난해서 통나무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여덟 살 때는 어머니까지 돌아가심으로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 자기가 보던 성경을 물려 주면서 "이것 밖에 네게 물려줄 유산이 없으니 이 책을 늘 읽고 이대로 실행하라"고 하였습니다.이 유언과 성경을 받은 링컨은 평생 그 말대로 지키어 성경으로 만든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 때에 포켓 성경을 들어 보이며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이 성경 때문이며,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준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인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다 이 가운데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링컨과 성경과 어머니" -작성자 자연으로 돌아가라.
8.무디 선생의 어머니 [벳시] 여사19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대부흥사 무디 선생의 이면에도 역시 위대한 어머니 벳시 여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서 그의 확신과 겸손과 덕망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록 학교교육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그는 영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일에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덕을 베풀 줄 알았습니다. 무디 선생의 이면에는 어린 아들의 마음속에 보다 높은 차원의 신앙을 심어주시고 길러준 어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극도로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7남 2녀를 정성과 사랑을 아끼지 않고 길렀던 무디의 어머니 뱃시 여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1841년 5월. 41세의 젊은 나이에 무디의 아버지는 결혼 생활 12년 6개월 만에 노동에 지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늘 밝은 희망이 서린 눈길로 내일을 기대하며 아이들 교육에 성의를 다하라고 말하던 남편, 빈곤과 많은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는 아내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던 남편을 생각하면서 뱃시 여사는 자녀들이 없는 때면 한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지필 장작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다행히도 불쌍한 이들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들은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땔감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벳시 여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주님, 감사합니다. 나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희들을 돌보아 주시니 앞으로도 영원히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이러한 기도를 들은 어린 무디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엇이나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어머니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서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무디는 어머니의 기도로 힘을 얻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갔습니다.무디는 같은 동네에 사는 에베랫 목사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으며, 이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에베랫 목사는 무디의 가정을 위해 많은 관심과 염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불친절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과부 혼자서 여러 남매를 기르려면 힘이 들 터이니 어린 자식들을 남의 집 양자나 양녀로 보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뱃시 여사는 남의 집 양자로 보내면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있겠으나 인간을 기르고 신앙심을 심어주는 교육은 어려울 것으로 알고, 귀중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어떠한 고난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자녀들을 함부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자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우리는 모두 함께 하는 거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모두 나를 도와야 한다.”이 말을 들은 자녀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을 깊이 깨닫고 힘써서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아이들이 때로 말썽을 일으키면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본 아이들은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이 가정의 변함없는 일과의 하나는 식구들이 난로 둘레에 모여 앉아 어머니의 성경 이야기, 옛날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정신적인 양식이 무디의 영혼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어머니는 아이들의 실수나 장난을 꾸중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타일러도 순종하지 않고 고집을 피울 땐 엄하게 벌을 주거나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이 자랄수록 관대하고 따뜻하게 대했으므로 집안은 항상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그러나 신앙생활만은 한결같이 엄격하게 지키게 했습니다. 책임감과 약속을 강조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훌륭한 일임을 거듭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궁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집에 얻으려고 오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나누어 주어 자녀들에게 남을 돕는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의 이 같은 행동에 주위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주일엔 자녀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회학교에 출석하도록 했고, 교회 갈 때는 늘 하얀 깃이 달린 깨끗한 웃옷을 입혀서 보냈습니다. 온 식구가 하루 종일 예배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찬송가를 배우고 저녁예배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주일은 가족들에게 대단히 즐겁고 보람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한 절씩 외웠습니다.열일곱 살이 되자, 무디는 판에 박힌 듯한 가정생활에서 더 넓은 사회에 뛰어드는 모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도끼로 쪼개고, 톱으로 켜는 나무패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사랑하는 가족들을 등지고 맨손으로 나온 무디는 외롭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학벌도 기술도 없었고 나이도 어려서 취직할 곳도 없었습니다. 거리를 헤매던 끝에 그는 신문사에 배달부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실수로 실직당하고 구둣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열심히 일을 해 보아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사의 질시와 사회의 냉대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좌절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의 어머니로부터 기도에 힘쓰라는 간곡한 부탁과 자신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드린다는 편지를 받고, 무디는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겸손해야 하고 저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함을 깨닫고, 착실히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애쓴 무디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차츰 함께하기 시작했고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날이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무디는 거리에서 노방 전도를 하는 한편, 교회가 없는 벽촌에 교회학교를 세워서 많은 아동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마침내는 링컨 대통령이 와서 축복해 줄 정도로 그의 사역은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는 이제 구둣방 일을 그만두고 갈급한 영혼들을 먹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전도자의 생애를 시작하였고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가난과 냉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자신의 연약한 손으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 벳시 여사의 신앙교육과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무디 선생이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네이버 성돌네의 블로그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9.이율곡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상징[申師任堂]1504-1551]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 선생(1536 ~1584)은 왜의 조선침략을 막기 위해 10만 양병 설을 주장하였으나 동인의 반대로 받아들이지를 않자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서 지내며 나라를 걱정하였습니다.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 설 주장을 한 이유?당시 일본은 100여년의 내전을 종식하고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이 전국을 통일하면서 관백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통일이 되자 다이묘들에게 나누어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이불만을 밖으로 표출하려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이에 전쟁을 직감한 율곡이이가 선조에게 10만 대군을 양성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아홉 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사의 천재 이율곡선생은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율곡 선생은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하고 10만 양병 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 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출처 네이버 지식인.
10.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여사는 남편안태훈과의 사이에 안중근(1879~1910), 안성녀(1881~1954),안정근(1884~1949),안공근(1889~1939)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장남 안중근은 중국 하얼빈 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고,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 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고,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조마리아 여사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안중근 의사는 3남1녀의 장남이다
선친 때 부터 온 집안이 애국에 몸 받친 집안이다
조마리아 여사는 남편과 아들 셋 그리고 딸까지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평생 독립운동을 했다
불과 100년도 안된 역사 속 인물들이니 우리와 한 세기 속에 속한 사람들이다
현실감 없이 머나먼 선조들의 이야기 같지만
불과 100년 전 그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아들의 생명을 바친 많은 이들이 지켜낸 그들의 소중한 대한민국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다.
[출처]네이버-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작성자-moonkok
출처-[네이버 지식백과]조마리아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 되었고 훌륭한 어머니 슬하에서 위대한 인물이 배출 되어 나라와 인류에 기여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자녀를 신앙으로 잘 가르치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울제자교회 담임목사 박 영 규
*한국위안부소녀 기념교회 설립추진목사
*동대문 남은성도들 지도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억울하게 출교당한 목사 복직 추진위원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