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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 신학의 본류가 자유주의신학 ?
현종서
- 3336
- 2019-10-15 01:04:57
보수장로교회의 최덕성 교수에 의하면 자유주의 기독교의 속성을 대략 간추려, 첫째, 역사적 기독교와 상반되는 패러다임을 가지며 자연주의(Naturalism)에 뿌리를 박고 있다. 둘째, 성경과 교리를 무시한다. 셋째, 기독교를 도덕생활과 윤리실천 종교로 이해한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감리교회는 최덕성의 비판대로의 자유주의 기독교가 아니다. 그리고 보수신학의 대표격인 박형룡이 정의 하는 대로의 자유주의 신학이 감신의 신학이 아니며, 요한 웨슬리의 신학을 추종하고 있는 한 그가 주장한 보수신학 주장과 크게 다를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칼 바르트의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의 범주에 넣는데 비해 감리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에도 편협한 보수신학에도 반대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입장으로서 그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포용하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리고 윤성범박사는 당신의 신학을 자유로운 신학이라 하였을 망정, 절대 역사적 자유주의 신학을 따른 것이 아니었고 칼바르트 입장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그의 내심에는 웨슬리 신학이 늘 있었다. 그래서 후학들에게 웨슬리 신학 할 것을 권하시었었고 부흥사들과도 아주 친하게 지내신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감리회 계통 한 신학자(종교학자)가 한국 감리회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이라 규정한 이후에 감신 신학이 그 방향의 신학으로 우정 찾아가는 듯 하였고 그리고 WCC의 신학을 충실히 따른 모습도 보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이를 후일, 한 교회사가는 장감을 비롯한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신학이 그 원류였다고 하면서
장로교회 언더우드도 "소리질러 하는기도"를 즐긴 이였다고 했다.감리회 유형기 주도의 아빙돈주석 번역사건으로 인해 감리회가 자유주의를 택한 것으로 보았으나 그보다는 세계신학의 흐름에 개방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일 것이다. 새로 접한 흐름에 계속 몸을 맡기거나 반성하며 원래로 돌아가거나 제 3의 길은 찾는 것은 후학들의 몫이다. 그래서 한국감리교회신학은 열린복음주의라 클릭조정한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반성하면 자유주의 쪽은 여전히 교류하나 보수정통쪽은 학문에 있어서 교류를 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과 달리 교회의 80-90프로의 신앙은 웨슬리적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의 영향하에 있어 WCC나 NCC의 신학은 일부 학자들의 소리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적인 경향이 한국감리교회신학의 본류인양 안방을 차지하고자 하였을때, 교회와 부흥단으로부터 저항을 받고 두 교수가 서울연회에서 퇴출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감리회 본질의 세력이 감리회의 이질적 요소에 대한 항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두 교수의 영향을 깊이 받고 심각한 반성의 과정을 덜 겪은 제자들에 의해 그것이 한국감리교회의 원류인양 생각하여 안방에서 웨슬리 적 복음주의 신학을 쫓아 내려하는 형국을 보였던 것이다. 해방의 신학이나 민중신학, 그리고 다원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의 열매요,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상의 저류에는 성경의 계시중심적 가르침보다는 인간이성우위 사상하에 성서역사비평학이나, 진화론, 초월적 하나님보다는 내재적 하나님을 생각하며,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을 현대의 과학, 심리학, 사회학(맑시즘 포함),종교학등으로 해석하는 정치신학, 해방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성소수자 인정신학(자유주의 늪에서 빠진 좌익적 현대신학)을 선진신학으로 생각하고 들여와 비판없이 학생들에게 전달함으로 복음을 믿어 은혜받고 사명받아 신학교에 찾아온 학생들을 혼란케 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우측(정통,보수 은사신학)에도 열려(영미나 독일신학계에도 복음주의 전통을 지키는 영성깊은 신학자들이 소수로 존재) 균형을 잡아주고 나아가 영적분별을 통해 복음적인 "생명있는 신학"의 길로 인도해 주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모든 인본주의 철학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을 변증하고 전파할 수 있는 "영혼구원의 복음" 을 우선으로 한 복음전파의 전사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역자들을 길러 내야 할 것이다.
미 신학계의 좌경화를 근심하며 웨슬리 신학을 재 정립하려 하였던 캐논이나 오덴, 복음주의 신학으로의 회귀를 고민하던 일본 (관서?)감신신학대학장을 기억한다. WCC 신학에 빠진 미 감리교 신학교는 쇠퇴를 거듭하며 한국 감신까지 자기를 따르라 한다.
그러나 우리 한국 감리교회신학교는 최병헌,현순,이용도,이호빈,이호운,이성봉,이강산,나운몽, 정영문,김성남,박경룡 전진등의, 영성을 포함하는 신학연구활동을 하여 한국감리교회와 한국교회를 살려내며 복음통일, 미 감리회를 일깨우고 협력하여 세계 감리교회, 더 나아가 중,일, 인도에 그리고 몽골과 구소련, 유럽과 중남미 중앙아시아, 이스라엘에까지 복음의 역수출을 하는 복음적 토착신학을 강의 하는 신학교로 발전해 나가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본다. (감신의 자랑인 토착화 신학은 복음의 본질을 지키면서 효과적인 복음전파와 복음의 생활화의 효과적인 방편을 말하는 것으로 그동안 신학계에서는 한국의 종교철학과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선교적 효력이 약했는데 성령의 역사에 더 의존함으로 신학하려는 윤남옥 목사가 윤성범박사의 한국인의 심성속에 복음을 토착화하려는 의지를 실천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토착화의 기술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멋지게 이루어 졌고 앞으로도 그리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1907년도 심령부흥운동과 더불어 삼일만세운동, 임시정부수립, 대한민국 건국, 지금 자유민주통일 활동도 그런 토착화 신앙활동의 일환이라 본다. 우리 한민족이 처한 상황속에서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을 좇아 행하다보면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활동을 효율적으로 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심령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속에 이루어져 가는 운동, 그리고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큐메네)에 복음을 통한 개인구원이 빠진 이념운동(평화,휴머니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가는,개인구원이 바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개인과 국가와 민족을 그러한 나라로 이끄는 것이 복음적 토착화 신학이 가야할 길이라 생각해 본다.
기독교대한 감리회의 신학의 길은 결코, 웨슬리적 복음주의 그리고 복음의 토착화 신학이지 역사적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함이 아니라는 것을 재천명한다.
KMC 복음주의 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