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국가 경영을 염려한다.

오재영
  • 1892
  • 2019-10-23 15:45:56
자기 우매함을 모르는 지도자...

중국 송나라 때 재상 ‘마지절’은 서화(書畵)에 일가견이 있어 그림을 수집하여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는 특히 당나라 때 이름난 화가 대주의 작품 ‘투우’를 애지중지 하여 그림에 습기가 찰까봐 틈만 나면 마루에 펴놓아 말렸다. 어느 늦가을 소작료를 바치러온 농부가 마루에 펴놓은 그 그림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를 본 ‘마지절’이 그 농부에게 화를 내며 책망을 했다. “이 그림은 당나라 대가인 대주의 작품이다. 네가 그림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웃는 것이냐?” 그러자 농부는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 같이 농사만 짓는 농사꾼이 뭘 알겠습니까? 저는 다만 소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에 그림이 이상했을 뿐입니다.”
‘마지절’은 궁금하여 농부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농부는 ‘마지절’에게 대답하기를... "본래소는 싸울 때 뿔로는 상대편을 받으며 공격을 하지만 자기꼬리는 바싹 당겨 사타구니에 끼웁니다. 힘센 장정이라도 그 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소들은 싸우면서 꼬리를 치켜 올리고 있으니 말이 되지를 않아 웃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마지절’이 농부에게 말하기를, “대주는 이름난 화가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구나, 이 그림을 애지중지한 내가 부끄럽다....”

은혜(恩惠)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나라에도 파나소닉 이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의 마쓰시타고노스케 회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세상 적으로는 많이 배우지를 못했지만 기업인으로 일본사회전역에 큰 영향을 끼친 탁월한 인물이다. 그 회사가 한창호황일 때, 일본 내의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마쓰시다 전기에 입사하려고 했다. 그런데 맨 마지막 면접을 할 때에는 회장이 직접 질문을 했다고 한다. 질문의 내용은“당신이 이 회사에 올 정도로 탁월하게 준비된 것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당연히 둘 중의 한 가지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회장은 자기의 노력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은 모두 떨어트리고, 운이 좋았다고 답한 사람 중에서만 신입사원을 뽑았다. 몇 년 후에 이것을 눈치 챈 기자들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회장의 대답은 이러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성공한 것이 내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 덕분이라는 생각, 즉 다른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은 나중에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문제를 극복해 나가곤합니다. 반대로 자기노력으로 되었다는 사람은 항상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일을 해서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마쓰시타고노스케’ 는 크리스천이 아니므로 운(運)이라는 표현을 했다. 이 말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은혜를 안다. 즉 감사의 마음이 있다”가 될 것이다. 누가 인재(人材)인가? 한마디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 당연히 은혜를 알아 빚진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역사(歷史)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비스마르크의 말이 떠오른다. “미련한자 경험으로 배우고, 지혜로운 자는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
인류의 변천과 함께 반복되는 지나온 역사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으며 배우고 있는가? 2천여 년 전,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당시부터 지나온 천여 년의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를 다룬 춘추필벌(春秋必罰)에서 “제일 잘하는 최선의 정치는 백성의 마음을 따라가는 순리의 정치이고 그 다음은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다. 세 번째는 도덕으로 설교하고 네 번째로 못난 정치가 형벌로 겁을 주며 다섯 번째로 최악의 정치는 백성과 다툰다.”했다.

그 후 5백여 년이지나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정치철학을 기록한 사관 오긍은 “정관정요,”일종의 “지도자론”에서, “군주가 영명한 까닭은 널리 듣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편협 되어 어느 한 부분만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현명한 군주는 항상 자신에게 단점이 있음을 생각해 나날이 좋아지지만 어리석은 군주는 자신의 단점을 옹호해 영원히 어리석을 뿐이다” 관원을 선택하는 기준도 절대로 대충해서는 안 된다. “선한사람을 등용하면 선한사람이 몰려오고, 악한사람을 등용하면 악한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했다.

양신(良臣)과 충신의 구별...

우리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치세는 그가 탁월한 신하 ‘위징’을 만남으로 천하를 통일한사람이다.
위징은 본래 그의 정적의 수하이었으므로 의심하며 추궁하는 태종에게 “저는 폐하께서 저를 양신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충신은 싫습니다.” 하였다. 태종은 그동안 많은 경사(經史)를 두루 읽었지만 ‘위징’과 같은 말은 듣지 못했으므로 이해할 수 없어 “알 수 없는 말이요, 그대가 말하는 충신과 양신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위징’의 답은 과거 역사에 등장하여 당대에는 탁월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참혹함으로 생을 마친 이들을 거론하며 양신은 군주에게 많은 건의를 하나 군주로 하여금 받아들여 그 자신은 명예를 얻고 군주와 함께 영화를 누려 역사에 남는 대신이 됩니다. 반면에 충신도 많은 건의를 군주가 귀담아 듣도록 간언을 하지만 종국에는 그 군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국가는 망하며 자신에게는 오직 충신이라는 공명만 남습니다. 이것이 양자의 구별입니다.”하였다.

태종이 듣고 매우 뜻 깊은 이치임을 깨닫고는 계속 묻는다. “매우 옳은 설명인데,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해야 명석하게 되며 어찌하면 혼미해지는가?” 위징은 “군주가 여러 의견을 듣는다면 명군이 되고 참언(讖言)을 듣지 않으면 어리석게 됩니다.”하였다. 또 위징은 진나라 2세 양무제, 수양제가 한쪽 말만 듣다가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에 이른 사례를 설명하여 그 도리를 확실히 이해시킴으로 태종으로 하여금 높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태종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위징’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충언과 권계를 받아들이고 명군이 되도록 노력할 터이니 그대도 더 강하게 감춤 없이 거리낌 없이 간언을 하라”하여 백세(百世)에 영예를 얻은 양신이 되게 하였다. ‘위징’은 태종이 명군(名君)이 되고자하는 진심을 알고 너무나 기뻤기에 바로 태종을 향하여 절하며 장담을 하였다.
“폐하께서 명군이 되시고 저는 반드시 양신(良臣)이 될 것이며 결코 폐하의 크신 기대를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A.D.643년, 나이 예순셋의 위징이 중병에 걸렸다. 태종은 자주 위징에게 사람을 보내서 병문안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징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은 태종은 황태자를 데리고 급히 위징의 집으로 갔다. 태종은 슬픈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경은 할 말이 없소?”위징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소신은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옵니다. 지금 천하는 안정되고 나라는 창성(昌盛)하옵지만, 폐하께옵서는 이런 태평성대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시고 이를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고사성어 ‘거안사위,’居安思危)’는 이때부터 유래한 말이다.) 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꼭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그 며칠 후 위징은 세상을 떠났다.태종은 이를 매우 비통해했으며, 자신이 직접 묘비의 비문을 썼다. 이후로도 위징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 하루는 조정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 의관이 바른지를 알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의 도리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이오.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을 잃어버린 것이오.” 위징과 같은 충직한 신하들의 간언과 충언을 잘 받아들인 덕분에 당나라는 큰 번영을 누렸다. 이 태평성대의 시기를 역사상에서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한다. 이 당 태종에게도 위기가 왔으니 우리의 역사에 등장하는 고구려 정복의 꿈을 안고 침략한 안시성의 패전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돌아가면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만약 위징이 있었다면 고구려정복의 거병을 말렸을 터인데..."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노자의 도덕경에"믿을 수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또 아름다운 말은 믿을 수 없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능한 지도자일수록 선동정책을 쓴다. 국가경영의 막중한 책무를 벗어나 실패한 무능함은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로 족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풍전등화’ 같은데 여야(與野)가 어디 있기에 서로 편을 갈라 온갖 분쟁으로 날밤을 새우며. 아직까지도 “고소영, 문고리삼인방, 캠코더”인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가? 오늘 대부분은 분쟁의 진원지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지위가 높으면 그에 따르는 책임도 무겁다. 이제는 대통령께서도 초심으로 돌아가 취임사부터, 아니 국민들에게 대통령(職)을 맡겨달라고 부탁하든 후보시절부터 본인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돌아보며 자기를 성찰함이 합당하다. 지금 원만한 이성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문대통령의 국가경영을 염려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경영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 부실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본회퍼 목사가 감옥에서 본 환상.

목사들의(說敎例話)에 등장하는 내용 중에 우리가 잘 아는 히틀러시대의 독일고백교회 디트리히 본회퍼목사,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암살에 가담했다. 그는 히틀러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사의 실패로 1945년 4월 9일 집단수용소에 있는 형장에서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는 사형집행을 당하기 며칠 전, 독방에서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다. 그 환상의 내용은 히틀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께 항변을 하더라는 것이다. “저는 죽어서 이런 세계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제가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유태인 6백 만 명을 비롯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였겠습니까?” 울부짖으면서, “누구하나 저에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지옥을 가야 됩니까?” 그렇게 울부짖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회개하면서 이렇게 기도를 했다. “주님! 나는 그를 죽이려고만 했지 그의 영혼을 구원할 생각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

오늘 이 혼돈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정확하고 순결한 복음의 전달자로 주께 충실하게 쓰임 받을 구령(救靈)의 열정은 준비되어있는가? 이제 이 땅에도 복음으로 인한 삶의 분명한 목적이 있어 지도자가 존경을 받으며 함께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신조가 있으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도록 꿈을 꾸며 기도드린다.

이전 홍일기 2019-10-23 2019년 김장은 괴산 절임 배추로 하세요.
다음 원동광 2019-10-24 2019년 제11차 수표교포럼 "도시교회, 그 성숙의 실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