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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세계교회 협의회 (WCC)의 신학이라하더라도, 성서아래 있다.
현종서
- 1562
- 2019-10-22 23:49:35
만일 세계 교회 협의회가 하나님의 구원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이외에도 구원의 길이있다고 주장한다면, 성서가 가르치는 구원의 길과 다른 잘못된 이론으로서,사탄의 미혹에 빠져 하는 헛 소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원주의 구원론은 비성서적인 것으로서, 성경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됨과 최고의 재판정이 된다고 주장하는 웨슬리를 교조로 따르고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려면, 성경에서 그러한 가르침의 예를 먼저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불교와 대화를 한다면 연구하던 변박사가 그러한 주장을 했다면 그 분의 이론이 그릇되다 하는 판단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은 그분의 신학적인 연구과정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불교도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선 그들이 믿고 있는 불교의 교리를 알아야 했다. 그분이 오랜 역사동안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주어온 불교의 교리를 개신교 신학자로서 연구하고자 신학적으로 불교와 대화를 하려는 용기는 높이 살 일이고 절대로 폄하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그분이 선구적으로 한 것이다. 문제는 그의 연구가 완성되기전에 - 그분의 이론을 듣고 불교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하는 이론을 세울때가 바로 그 때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능성을 찾으며 실험신학을 하시는 중, 그분의 미완성 연구물이 사회적으로 노출되고 교회에도 알려져 그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그러할 경우, 자신의 연구가 완성품이 아님을 솔직히 알리고 실험중이라 하였으면, 파장을 잠재웠을 것이라고도 본다. 그리고 좀 더 조심스러이 불교도 알아야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적인 교리에도 걸리지 않는 무엇보다 성서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이론을 만들어 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의 작업은 들어난 것 이상을 넘지 못하였다.
그분이 불교와의 대화라는 과제가 브레이크에 걸렸다면, 그때 그 문제를 겸허히 수용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더 목회자, 부흥사, 일반신도들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하였더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분의 수명이 다하여 그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면 후학들이 그분의 약점들을 보완하여 성서적 기독교복음의 절대성을 천명하였다면. 그분의 그동안의 학문적 업적은 비록 미완성이요 후학들에 의해 완성하였을 지라도
빛이 날 것이다. 후학들은 그가 멈추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그분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그에게 이의를 제기한 이들을 향해 교권주의자들이 무식해서 한 일이라면서 한국감리교회는 교리가 없고 실천만 강조하는 교단인양 선전하는 것이야 말로 그분을 위한 것도 교회를 위한 것도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도 아닌 것이다. 이제라도 그분의 미완성신학을 완성으로 이끌 후학들이 요청된다고 본다. 기독교신학은 일반철학이나 종교학을 넘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두는 학문인 것이다.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 까 주의하라. 이 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2:8-10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신앙생활은 물론 교회를 위한 신학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줄 로 안다. 이제 미국이나 독일에서 배운신학 그대로는 안된다. 적어도 한국 감리교회 신학은 그것들을 넘어서야 한다. 선진신학으로 그대로 해보니 교회와 신학교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이미 그러한 신학하에 구미교회가 쇠퇴해 가고 있는 까닭이다.
웨슬리의 복음화운동 미국의 대각성운동은 소위 대륙에서 발전된 계몽주의 산물로서의 자유주의 신학을 모를 때 일어난 일들이었다. 한국교회의 1907년도 부흥도 마찬가지였다. 계몽주의 소위 이성의 각성운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위에 두거나, 계시와 동등시하는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부흥운동이 억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개신교회를 통한 부흥운동에 위협을 느낀 캐톨릭의 제수잇의 반종교개혁운동, 그리고 나치즘, 콤뮤니즘, 이슬람은 속성이 전체주의로서 그 내면에는 성령을 좇아 행하고자 하는 기독교와 그정신으로 세워진 사회를 파괴하고 박멸하고자 하는 게 그들의 활동목표인 것이다.
마르틴 루터를 대표로해서 일어난 운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이 정신으로 부흥해 가는 서구 모던니즘 사회를 보이지 않는 사탄의 사주를 받는 전체주의 성향의 세력, 비도덕적 탐욕주의 세력들이 프로텐스 탄트적 기독교적 사회를 무너 뜨리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감리교회는 WCC의 신학방향을 따르며 그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할 게 아니라. 웨슬리의 정신을 따라, 한국의 선비정신을 따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한다. 다원주의나, 종교통합의 길은한국감리교회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성경과 역사적인 신조, 그리고 믿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의 원리와 함께하는 성령의 역사를 좇음이 KMC 감리교도, 한국과 그넘어 개신교 교도들이 가야할 길 인 것이다.
KMC 복음주의 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