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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리브가의 역할이 보여 주는 것(10.20 주일낮 설교요약)
오세영
- 1428
- 2019-10-22 07:14:56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동생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운명적으로 장자권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리브가의 존재와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권을 물려주려고 하는 상황을 알았고 야곱에게 에서처럼 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별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속이므로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하였던 것입니다.
리브가의 이러한 맹세는 이스라엘의 전통상 실효성이 있는 것이며 이삭이 저주한다면 그 저주는 리브가에게 돌아가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법인 것이 분명 합니다.
리브가가 누구보다도 그러한 하나님을 잘 알면서도 서슴없이 아들을 위해 저주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차지한 것은 많은 영적 비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래적으로 차자였던 야곱은 우리 인간 자체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가 아니기에 장자권에 아무런 분깃이 없는 사람입니다.
실락원 한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생들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 하나님 나라에 분깃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야곱과 같은 은총을 입지 않는 한 영원한 복을 상징하는 장자의 명분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장자권을 가져다 준 사람이 리브가 입니다.
우리가 본문의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리브가가 없었다면 야곱이 어떻게 이삭에게 나아갈 수 있었으며 장자의 명분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야곱의 처지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어진 인생들 자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들이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리브가 입니다.
리브가가 한 말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생생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리브가가 야곱의 저주를 자신에게 돌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갚아 주시므로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없는 우리 인생들이 나아 갈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리브가로 인하여 야곱이 이삭 앞으로 나아가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 그리고 저주가 가리워지고 도말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 하신 말씀을 통하여 리브가의 이야기가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신구약 전체의 말씀을 통하여 온통 그리스도의 하실 일과 성취하신 일 그리고 속성과 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리브가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기꺼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 죽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받을 영원한 저주를 자신에게 돌리시며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어머니라면 자식을 위하여 저주를 대신 받고자하는 마음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인간지사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 안에서는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브가가 서슴없이 야곱이 저주를 받는다면 자신에게 그 저주를 돌릴 수 있었듯이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면 그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바다에 던졌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눅5:5)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빈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고 넘치게 된 것처럼 그 말씀에 의지한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오늘 리브가의 말과 역할을 보면서 그리스도가 내게 그처럼 하셨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여 말씀을 의지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그물을 내리듯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보여주는 대로 아멘하며 그물을 내리는 것이기에 말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말씀이 살아서 내게 양식이 되고 능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를 은혜로 충만케하여 변화시키게 됩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위해 저주를 받기 까지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까!
그 사랑을 리브가와 족히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또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모든 상황을 알려주었고 이삭에게 나아갈 방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담대함을 얻었고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저주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장자의 명분을 받아 가지게 됩니다.
장자의 명분을 받은 야곱이었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란 땅에 함께 가셨고 라반의 핍박을 넉넉히 이기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야곱이 아직 이스라엘이라 칭할 만큼 변화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와 늘 함께 하셔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기며 능력 있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리브가가 아닌 야곱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그는 반드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표를 향하여 서서히 야곱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