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강해: 믿음은 담대한 것이다(11.3 주일낮 설교요약)

오세영
  • 1554
  • 2019-11-04 23:26:15
성경: 삼상14:6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사울왕 때 대군의 블레셋군이 공격해 왔습니다.
병거가 3만 승이요, 마병이 6천이며 군사의 수는 바다의 모래와 같았다 하였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3천명이었는데 그나마 블레셋의 숫자에 겁을 먹고 도망을 가게 되어 6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6백 명도 바위틈에 숨고 구덩이에 숨고 숲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분위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상항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을 보인 사람은 요나단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사울 임금은 사무엘을 기다리다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백성들은 도망치거나 숨거나 하였던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사람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순간에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믿음의 사람 요나단과 그렇지 않은 사울왕과 백성들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앞에서도 여호와를 바라보고 믿음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도망치거나 두려워하거나 인위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믿음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요나단이 보인 행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요나단은 홀홀단신으로 할례 없는 백성에게 나아갈 것을 결단했습니다.
그가 할례 없는 백성들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하노라” 하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과연 믿음의 사람으로 표현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요나단이 산 위에서 계곡에 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군대를 보며 내려오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그 엄청나고도 큰 광경을 보며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병기든 자 한 명을 거느리고 적진을 향해 내려가는데 산 아래 계곡에 바다의 모래알처럼 가득한 블레셋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병거와 칼과 창 그리고 방패에서 번쩍이는 섬광들이 있고 우렁차게 들리는 말들의 표효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요나단은 용감하게 내려가며 블레셋을 홀로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이러한 전쟁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당당히 내려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단이 처한 형편을 보며 우리도 때때로 인생길에서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는 모든 인생들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순간을 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이 옛말에 고해(苦海)와 같은 것이라 했고 “살림살이가 호랑이 입 보다 더 무섭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인생길에 이처럼 두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삶을 살면 살수록 만만치 않은 인생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고백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날 마치 내가 요나단처럼 블레셋 대군이 기다리는 전쟁터로 나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올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본문을 이렇게 풀어보는 것은 이전 날 연단의 날이 계속 될 때 이 본문을 읽으며 마치 제가 요나단의 상황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요나단을 생각하며 용기백배했고 믿음의 길을 깊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요나단만큼은 아니어도 인생의 삶 속에 오는 시련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보통 사람들은 결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이 두려움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질환과 육체의 질병을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가 겪는 경제적인 문제나 건강, 인간관계 등 수 많은 갈등과 아픔은 두려움에 빠지게 할 때가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을 보십시오!
요나단은 그러한 기막힌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실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블레셋 진영에서 나오는 대답으로 증거로 삼았습니다.
요나단이 그들 앞에 임했을 때 “거기에 있으라 우리가 가리라”하는 블레셋 군사의 대답이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리로 건너오라” 하면 이 전쟁을 이스라엘에 붙이는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응답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먼저 응답하시고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 응답은 알려 준다는 것이고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하나님께 먼저 응답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은 먼저 보여주시고 행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하늘의 별처럼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습니다.
노아에게 큰 비가 올 것을 알려 주시고 방주를 만들라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갈 때 전쟁의 승패를 알려 주셨습니다.
요나단도 그 전쟁의 승패를 하나님께 물은 것이고 승리의 응답을 얻은 것입니다.

요나단이 승리의 증거를 얻었지만 여전히 블레셋은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전진해 갈 때 블레셋 진영은 자중지란이 일어나며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이나 성경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미리 응답이나 보여주심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나아갈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죽으심과 부활을 미리 말씀하셨고 승천하심과 재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세상 끝날 까지 함께하리라” 하셔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보장해 주신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한다면 군사의 수와 상관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담대히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거를 보여 주셨듯이 하나님의 증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심을 의심치 말고 담대한 인생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보여주시는 증거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며 “십자가” 입니다.
이 응답은 우리가 영적으로 받는 어떤 응답보다도 분명한 것이며 틀림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 십자가에 나타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이전 유삼봉 2019-11-04 감사하는 인생(이계준 목사, 연세대 명예교수)
다음 함창석 2019-11-05 감리회 해골(骸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