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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여인의 보은의 사랑(참조: 감사절)
최세창
- 1494
- 2019-11-15 06:17:22
1. 시작하는 말
모든 사람간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구원 방도를 찾는 사람과 자기가 의인인 줄 알고 잘난 자기를 과시하는 인생길을 가는 사람과 주님을 믿어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받고, 감사와 보은의 사랑으로 행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인생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어느 국가나 누구보다도 국민에 대한 감사를 알고, 보은의 사랑으로 충성해야 할 사람은 통치자입니다. 이유는 국민이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힌 목적은 그의 사리사욕과 권력 남용이나 이념 구현이나 독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 대한 충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직자와 단체장의 경우에도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2. 사함받은 여인의 보은의 사랑과 바리새인의 위선
율법을 행하므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 중 한 사람인 시몬이 예수님께 함께 잡수기를 청하였고, 예수님은 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구주로 여겨 융숭한 대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심 겸 시험을 하려고 초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속셈을 아시면서도 지도층인 바리새인 시몬의 초대에 응하신 것을 미루어 하류층뿐만 아니라, 지도층이나 상류층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편애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러 오셨고, 약자들만의 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속하는 대속 제물이 되려고 오신 것입니다.
당시에는 손님들이 장의자에 왼쪽 팔꿈치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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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두 발을 뒤로 뻗은 채,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식탁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죄인인 동네 여인이 향유가 담긴, 결이 매우 좋은 석고로 된 흰색 단지인 옥합을 들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동네 집에 계신 것을 알고, 절호의 기회로 삼아 활용한 것입니다. 잔칫집에는 거지나 지체가 높은 사람이나 다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남자들의 식사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남들이 죄인인 줄 아는 여인이, 초대도 안 받았는데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온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죄인인 여인은 예수님을 열렬히 사모하였고, 또 기회를 활용하는 지혜로운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가,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게 된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님을 뵙게 된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눈물에 젖은 예수님의 발을 자기 머리털로 씻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맞춘 것은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은, 감사와 감격과 경외심과 사랑과 존경심에서 비롯된 봉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여인은 주 예수님께 최선을 다해 죄 사함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사랑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 중에 어느 것 하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당신의 발에 부어지는 향유를 낭비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용납하셨습니다. 감사나 보은의 사랑에는 낭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 풍조가 이상하게 돌아가니까, 부모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사랑까지 말라버립니다. 자유 민주 국가의 발전을 이룬 스승들과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가들, 그리고 노동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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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민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 감사와 보은의 사랑은커녕, 이념과 진영에 따른 반감과 적대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 중에 문제아나 범죄자들만 처벌해야지, 그들 모두를 싸잡아서 비난하고 비방하면서 적대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소개한 글입니다. 어느 해 삼복더위 중에, 어느 장로님이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보신탕을 해드리려고 집에서 기른 칠월이를 태우고 함께 갔습니다. 칠월이는 죽으러 가는 줄도 모르고, 주인인 장로가 이끄는 대로 차에 탔습니다. 꽤 먼 거리인 계곡에 도착한 후, 칠월이를 나무에 매놓고 몽둥이로 때려 잡으려 했습니다. 주인인 장로에게 엄청 많이 맞던 칠월이가, 버둥거리다가 느슨해진 줄을 끊고 도망쳤습니다.
장로님이 목회자들에게 보신탕을 못해 드린 것이 죄송해서, 오는 길에 식사 대접을 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칠월이가 장로님을 보고는 꼬리를 치면서 안기는 겁니다. 꼬리치는 칠월이를 보던 장로님은, 마음이 짠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습니다. “저는 저 개만도 못한 장로입니다. 몽둥이로 때려죽이려던 주인에게 한결같이 충성하고, 사랑을 표현하는데 저는 작은 시험에도 넘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사연을 들은 담임 목사님이, 칠월이를 생각하면 기도가 절로 나온답니다. “주님, 저도 그 개 같은 목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인간의 삶의 기본은, 감사와 보은과 사랑이어야 합니다. 감사와 보은을 알고, 그런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유대와 유대교의 지도층인 바리새인인 시몬은, 여인의 모든 행동을 보고도 그녀의 감사와 감격과 보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모든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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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심중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는 죄 있는 여인으로서 율법과 관습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이중으로 못마땅히 여겼고, 게다가 그런 여인인 줄도 모르고 그녀의 잘못된 행동을 기꺼이 용납하시는 예수님께 대해서도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는커녕, 선지자로도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그런 시몬의 잘못된 생각을 알고 계셨고, 그 여인의 인격과 죄, 그리고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은 행동의 깊은 뜻까지 통찰하고 계셨습니다.
제자의 어머니가 기도로 사는 기도원 원장이셨는데, 주석 후원을 하셔서 답례로 제자를 통해 제 주석책을 선물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원장님이 고맙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주석책을 들고 기도하고 나서 표지와 저자의 이름만 보고는, 목사인 저의 성격과 처한 상황과 태도 등을 알고 말하는 바람에 놀랐습니다. 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은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은 의인인 줄 착각하는 바리새인인 시몬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고, 그에게 대답하여 이를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예수님더러 “선생님 말씀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메시아나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고, 선생으로 여긴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시몬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채권자에게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채무자와 오십 데니리온의 빚을 진 채무자가 있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한 “데니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로마의 동전이고, “탕감하여”의 헬라어 에카리사토(ἐχαρίσατο)는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대답이 뻔한 예수님의 질문을 들은 바리새인인 시몬은, “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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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실상, 바리새인인 시몬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문과 그의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은, 바로 그 바리새인인 시몬의 영적 무지와 몰이해와 무례에 대한 비판과 책망이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바리새인인 시몬에게 여인을 보게 하신 후에, 여인이 당신에게 한 행동 하나하나를 열거해 가시면서 비교하며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그녀의 감사와 감격과 보은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행동들은,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용서받은 일이 적으면 적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손님 접대 관행 중에 한 가지도 제대로 안 하고 푸대접한 바리새인인 시몬을 책망하신 목적은, 의인인 줄 착각하는 그에게 깨닫고 회개하고 당신을 구주로 믿어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곁에 있는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역시 율법 행위로 죄 사함과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함께 앉은 유대인들은 속으로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3, 맺음말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은 죄 중에 잉태되고, 불신앙과 죄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구원의 길을 찾는 사람은 인격 수양이나 자아실현, 양심 행위나 도덕 행위, 율법 행위나 종교 행위 등에 힘쓰지만, 세상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자기가 의인인 줄 알고, 잘난 자기를 과시하는 인생길을 가는 사람은 남들 위에 우뚝 서서 군림하는 성공과 출세의 야욕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엔 빈손으로 죽고 멸망합니다.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의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천국에 가기까지 주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과 보은의 사랑으로 행하고 일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누가복음 7:36-50)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7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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