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최세창
  • 1592
  • 2019-11-08 21:31:14
(설교 동영상은 유튜브에)

1. 시작하는 말

사람은 다 나약하고 불완전하고 병약하고, 세상은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온갖 문제를 만나게 마련입니다.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살아가는 것이고, 기업과 국가 경영입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문제나 국가적인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런 반응을 당연하다고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울까 하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없어도 하나님의 성육이신 영생의 주님을 믿을까, 기도할까 하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실상, 모든 문제에는 성장을 위한 보배가 담겨 있고, 해결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과 희열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모욕한 산헤립 왕과 신복들을 대항한 기도

주전 701년경에, 남 왕국 유다는 거국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에까지 진격해 온 것입니다. 산헤립 왕은 예루살렘 근처의 라기스를 공격하면서, 신하들에게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신하들은 왕보다 더 심하게 이스라엘의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을 비방했습니다. 산헤립 왕은 재차 편지를 보내서,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했습니다. 열국의 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을 자기 손에서 구원해 내지 못한 것처럼, 히스기야 왕의 신들도 백성을 자기 손에서 구원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산헤립 왕의 편지에 고무된 신하들과 군인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함성을 질러 예루살렘 성에 있는 백성의 간담을 서늘케 해서 성을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더 어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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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없는 일은, 하나님을 훼방하기를 사람이 만든 각 나라의 온갖 신들을 훼방하듯 훼방한 것입니다.
산헤립 왕과 그의 군대는 정복 전쟁에 연전연승하는 바람에 기고만장했지만, 실은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신들과 같이 취급하며 모독하는 영적 무지와 오만불손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게 그 통치자는 자신의 멸망과 조국의 멸망을 앞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통치자는 유다에게 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통치자인 산헤립처럼, 알거나 확신하여 하는 언행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은 무슨 언행을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7을 보면,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3:34에는, 주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신 기도가 있습니다.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범죄자들은, 모르고 했으므로 사함받아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주 예수님이 인류의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위한 대속 제물이심을 알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죄악인 줄 모르고 범한 죄악도 죄악이고, 알고 범한 죄악도 죄악입니다. 폐해는 다를 게 없습니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하고, 아부하느라 알고 속이는 죄나, 모르고 속이는 죄나 다 자신과 자당과 자파를 불신하게 만드는 대국민 사기입니다. 대량 살상을 비롯한 온갖 죄악이 난무하는 전쟁인 줄 알고 침략하는 죄악이나, 모르고 침략하는 죄악이나 다 천인공노할 죄악입니다. 이런 죄악의 축적과 침략 전쟁의 연전연승은 파멸의 길입니다. 전범자들은 침략 전쟁의 승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로마서 2:4 이하를 유념해야 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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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딘가에서 누구 또는 무엇인가에 의해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문제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면, 문제 해결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해답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귀가 미혹하는 권세자라면,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한 전지전능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십니다. 해결될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의 씨름을 해야 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침략으로 인해 자신을 비롯한 국민 각자와 가정과 기업의 심각한 문제와 조국 전체의 존망이 걸린 막중한 문제에 봉착한 히스기야 왕은, 정말 지혜로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연전연승하는 앗수르의 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거짓과 위선과 아첨을 일삼는 신하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와 함께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히스기야 왕이 부르짖은 기도의 내용이 열왕기하 19:14 이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창조주시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산헤립의 말을 좀 들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산헤립을 비롯한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여러 나라와 그 땅들을 황폐케 하고,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지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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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지만, 실은 신들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나무와 돌의 형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계제에 산헤립 왕의 손에서 구원하시면 천하만국이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통찰과 확신으로, 하나님의 사자와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문제는 해결된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히스기야 왕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여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된다.’라고 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해력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의 이성으로 납득되는 수준의 능력밖에 없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이고, 급살을 맞는 일도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며 기고만장하여 큰소리치던 산헤립 왕은, 얼굴이 뜨뜻하여 살아남은 군사를 이끌고 귀국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19:20 이하를 보면, 그가 신전에 들어갔을 때, 자기가 낳은 왕자들의 칼날에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 산헤립 왕의 비참한 말로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를 통해 응답을 받았던 것이고, 또 찾아온 히스기야 왕의 사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에게 알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이사야와 함께 부르짖어 기도한 히스기야 왕이, 응답 받은 것은 그 승리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고, 또한 사면으로 보호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안 많은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드렸고, 히스기야 왕에게 보물을 바쳤습니다. 결과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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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히스기야 왕은, 열국의 눈에 높고 큰 인물로 부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승리한 유다 왕 히스기야의 역사적 사건에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부르짖어 기도만 해서 응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역대하 32:2 이하를 보면, 히스기야 왕이 안보를 위해 철저히 방어 준비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성밖에 있는 우물과 샘들과 시내를 막아버렸는데, 이는 광야의 전쟁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작전이었습니다. 퇴락한 성을 중수하고, 망대와 외벽을 높이 쌓았고, 다윗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였고, 병장기를 많이 만들었고, 군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였고, 성문 광장에서 백성들에게 앗수르 군대를 두려워 말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도우시고,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격려해서 온 백성이 안심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는 기도, 개인이나 조국의 문제 해결의 응답을 받는 기도는 행동이 뒷받침되는 기도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그 교인의 기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결과를 위해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연구하며 일하지 않으면, 그 기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기도와 행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3. 맺음말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해결해 나가는 수고와 노력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값진 보화가 담겨 있고, 해결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과 희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과 부르짖는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해결 노력과 기도가 필요한 모든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쌓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기적의 권능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승리케 하시고, 새 은혜와 복을 주시는 방편입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과 조국의 문제를 위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아무쪼록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와 행동을 같이하여,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역대하 32:16-23, 마가복음 11:24)

16산헤립의 신복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서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열방의 신들이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18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취하려 하였는데 19저희가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훼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백성의 신들을 훼방하듯 하였더라 20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22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7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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