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과 속을 아시는 주 예수

최세창
  • 1243
  • 2024-09-09 04:10:17
https://youtu.be/tevrXakGL_w?si=A68MLgNWok4uN6cf

<요한복음 2:23-25>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1. 시작하는 말

세계 역사상 제일가는 대가도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사대 성인이나 교주나 철학자나 심리학자나 인문학자도 자기 분야와 자기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을 때까지 겸손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질인 피조성과 의존성, 죄성과 이기성, 가능성과 자율성, 유한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을 알아야 합니다. 또,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아시고, 인간을 위해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좇아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여 보다 깊고 보다 폭넓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2. 인간에 대한 예수의 통찰력

주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모세를 통해 구원하신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일주일 동안의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3:9 전반을 보면,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행동과 생활의 주체인 몸의 안팎을 유월절의 의미로 새기고 치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구원자 하나님을 믿거나, 그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온갖 불행의 원인이자 영원한 멸망의 원인인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종교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떠한 고난이나 마귀의 사슬에서라도,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건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유대인들, 특히 유대교와 유대의 지도층의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시고, 예루살렘에서도 메시아로서의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의 표적은 자기과시나 전시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핍박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표적을 통해서 사람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죄 사함과 거듭남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이름”(오노마, ὄνομα)이란 성경에서 그 존재 자체를 지시하는 것입니다. 휴스(P. E. Hughes)는 “히브리인의 의식에 있어서 이름은 어떤 사람의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의 그의 근본적인 성격을 상징한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한마디로, 그 이름을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 곧 메시아로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주 예수님을 신뢰하여, 자신을 주 예수님께 맡기고 따르는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당신을 주 곧 메시아로 믿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의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맡기어 부탁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라”고 한 “아심”의 헬라어 기노스케인(γινώσκειν)은 중요한 말입니다. ‘관념적으로 안다’, ‘초경험적으로 안다’, ‘영감으로 안다’, 등을 뜻하는 헬라어 오이다(οἶδα)와 달리, ‘체험적으로 안다’, ‘체득하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에서는 구원받아 주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이시자 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좇는 생활을 통해 얻는 영적 진리나 영적 사실을 아는 것에 사용됐습니다.

사람을 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머리로 얼굴 생김새, 체격, 성격, 소질, 능력 등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겪어 보고 아는 것입니다. 물론, 겪어 보고 아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사람은 겪어 본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신학대학 시절에, 교육학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이 사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예를 들어 설명하시는 바람에 모두가 웃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마루에서 잔일을 하시고, 아버지는 좀 떨어진 마당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답니다. 오랜 세월 해로하셨으니 서로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하고, 어머니께 “아버지하고 오래 사셔서 아버지를 잘 아시겠네요?”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저 영감탱이 속을 어찌 아누!’ 하시더랍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 신뢰하는 마음으로 자신이나 재산이나 일을 맡겼다가, 심신이 망가지거나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같은 집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자며 자란 형제자매라도,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회와 제가 수년째 돕고 있는바 암환자 쉼터를 만들고, 암환자를 위한 목회를 하는 조경선 목사님이 쓴 간증집 「살아줘서 고마워요」의 한 내용입니다.

조 목사님이 암환자와 보호자 서너 명과 찬송가 4절을 부르면서 무슨 말씀으로 복음의 신비를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근데 이 말씀 잠언 4:23로 무슨 말을 전해야 하나요?’ ‘그거 있잖아, 이 복 받을 놈아, 잘 먹고 자알 살아라!

설교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식도암 환자가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다 저보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그런가요? 뭐가 그런 것 같던가요?” “저도 형님이 미워서 틈만 나면 술 퍼먹고, 낫 들고, 칼 들고 쫓아가서 너 죽고 나 죽자 했습니다.” “아니 왜요?”

식도암 환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결혼한 형과 함께 살다가 입대했습니다. 파월 장병이 되어 월남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돈을 벌어서 모두 형에게 보냈습니다. 미군 PX에서 나오는 물건을 내다 판 돈까지 형한테 부쳤습니다. 집을 몇 채 살 수 있는 큰돈이었습니다. 형은 그가 보내 준 돈으로 그를 위해 밭도 사고, 논도 사고, 집도 사 놓았다고 했습니다.

귀국할 때 멋진 양복 한 벌을 맞춰 입고 싶었는데 그 돈마저 맡기라고 해서 다 내주었습니다. 귀국해서 번 돈도 형에게 맡기라고 해서 맡겼습니다. 형은 착실히 재산을 불려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도, 형은 여러 가지로 핑계를 대면서 돈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하던 일이 안 되어서, 끼니를 굶을 때에도 한푼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별하여 혼자 삼남매를 키우며 힘들게 살 때에도 모른 척했습니다.

아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하이고 말도 마세요. 내가 결혼해 오니까 이 이가 교회를 다니긴 한다는데, 토요일만 되면 술 먹고 형님네 가서 행패 부리느라고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더라고요. 다 잊어버리고 살자고 했는데도 그러질 못하는 거예요. 이제는 나이도 먹고 해서 다 잊어버리고, 형님네하고도 그전처럼은 안 하지만 미움과 원망은 그대로 남아 있지요 뭐.”

그 식도암 환자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아무튼,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고, 미움과 증오로 산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거나, 그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믿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하고, 일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이기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자신과 자신의 능력이 대단한 줄 알고, 제반 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 사고로 일을 추진하다가 넘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가 갑자기 엎드리더니 한 곳을 주시하면서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어느 순간 전력 질주하더니 쥐를 잡았습니다. 외양간의 소가 또 음매 하며 감탄했습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어느 날, 소가 논두렁에서 뒷걸음치다가 뭔가 밟혀서 보니 쥐였습니다. 뒷걸음질로 쥐를 잡은 겁니다. 소는 자기에게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문가라는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전심전력을 다하는데, 자기는 보지 않고도 뒷걸음질로 쥐를 잡는 놀랍고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걸 체득한 소는 고양이의 능력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당연히 이긴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 소가, 망설이는 고양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내기를 걸었습니다. 정한 시간 안에 쥐를 많이 잡은 쪽이 진 쪽의 전 재산을 갖는 조건이었습니다. 망한 소는 뒤로만 걷는 광우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을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세계 제일의 대가도 자신과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자기를 알고,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안다고 자신과 일과 재산을 함부로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만이 사람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을 유월절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의탁하면, 그들이 자신을 앞세워 로마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일으킬 것을 아셨습니다. 또, 이해관계에 따른 대중의 변덕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누구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주 예수님이 마음속까지 아신다는 것은, 죄와 불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지만,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큰 힘과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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