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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 추수감사절-감사하지못한이유(11.17 주일낮 설교 요약)
오세영
- 1817
- 2019-11-16 19:02:07
제목: 감사하지 못한 이유
금년 추수감사절에는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감사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주인으로 부터 각각 큰돈을 받은 세 명의 종중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으로 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 돈을 땅에 감추었던 것은 악하고 게으른 것이었습니다.
이 악하고 게을렀던 종은 주인과 결산할 때 주인에 대하여 “굳은” 사람이라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굳은”은 헬라어 스클레로스 인데 “”완고하며 거칠다“는 뜻이어서 누가복음에서는
”완고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모두다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돈을 축내면 벌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땅에 묻어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인에 대한 인식은 자기변명이었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34kg이 좀 넘어 요즘 싯가로 17억 원 정도 하는 큰 돈 입니다.
그럼에도 앞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어서 불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주어진 막대한 것을 잘못 관리했고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평가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달란트 비유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의 결과가 얼마나 우리를 악하고 게으르게 만드는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다른 종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달란트를 감사하게 여겼다면 주인의 뜻을 알았기에 땅에 묻어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달란트 밖에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근본적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의욕을 잃고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리며 주인의 뜻을 회피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는 상처가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재능대로 주는 분량이 달랐기에 그는 재능이 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란트를 받은 것도 다섯이나 둘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이러한 열등과 비교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착각하고 오해하며 우울하고 침통해 할 때가 많습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는 말처럼 이 세상에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많아 보이고 자신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초라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끼기 쉬운 것이 인생입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면 무기력해 지고 사울 왕처럼 시기와 질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는 이 비교의식과 열등감으로 인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악하고 게으른 삶을 살게 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유의해 봄으로 더 유익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대부분 이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는 감사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라도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돈 입니까!
그 돈으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실 많은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출생 후 6주 만에 실명하였지만 95세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비롯하여 9,000여편의 찬송시를 쓴 화니 제인 크로스비나 뇌성마비 환자인 송명희 시인과 같이 장애를 딛고 일서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생각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충만히 갖지 않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는 것이며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믿는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에 대한 확증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 다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성서를 통하여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우리들이 감사하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일까요!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계수해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바다를 먹물 삼아 써 보아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 받고 있는 은혜가 큽니다.
감사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에 가장 아름답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 할 때 심령이 열리며 하늘문도 열립니다.
감사 할 때 생기가 넘치고 이해하고 관용하여 포용성이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주인의 선물에 감사하였던 사람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내가 감사로 새로워진다면 삶의 무게나 어두움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주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이루게 됩니다.
금년 추수감사절에 저는 특별히 감사한 것이 무엇일까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와 닿은 감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지식으로 인하여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겼고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세계로 나를 인도하신 주님께 우리는 근본적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들의 결국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저 하늘의 비밀과 신비한 것들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져도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알게 되었고 그 세계로 초대 받은 우리들 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얻은 그리스도인 입니다.
값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진귀한 진주를 발견한 진주 장사처럼 나의 모든 불만과 열등감 그리고 분노 미움 등을 팔아버리고 감사를 살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값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