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살전 2:13)

최세창
  • 1720
  • 2019-11-15 22:29:28
바울은 1:2-4에 이어 다시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이러므로”(καὶ① διὰ τούτο)는 “바로 앞 구절인 2:14”(H. Alford, “H. A. W. Meyer”,② 이상근)이나, “2:1-4의 복음을 전한 사실”(J. E. Frame)이 아니라 2:1-12③를 받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1:2의 주석을 보라.)은”의 원문 초두에 “또한”(카이, καὶ)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바울 일행이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감사 편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④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늘 감사하는 내용의 소극적인 측면에 대해,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여기서는 하나님께 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말씀,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의미한다(R. L. Thomas, p. 233, 김용옥).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즉 주님의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설교에 대해 중차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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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J. E. Frame: D 사본에는 생략되었다.
2) in 이상근.
3) “Zahn, Lietzmann”(in 이상근), R. L. Thomas, p. 233, 박윤선.
4) “Rendel, Harris, Bacon, McGiffert”(in J. W. Bailey), J. E. Frame, J. W. Ba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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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로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⑤)라고 하였고, 또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⑥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 일행의 복음 선교(설교)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즉 “사람에게서 비롯된 말”(A. Barnes)로 받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헨리(M. Henry)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인간의 전도나 인간의 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미려함이나 설교 구성의 아름다움 또는 설교자의 목소리나 태도 등으로 기쁨을 삼으려 하고, 그러한 것을 유익으로 여기는 자들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설교를 자기 입장에서 취사 선택하며 듣는 것도 잘못된 자세이다.
바울은 늘 감사하는 내용의 저극적인 측면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받음이니”는 에덱사스테(ἐδέξασθε)로서 앞의 “받을 때에”(파랄라본테스, παραλαβόντες)가 단순이 받아들이는 것임에 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J. E. Frame). 또한, 파랄라본테스가 객관적 동작을 나타는데 비해, 에덱사스테는 주관적 동작을 나타낸다. 특히, 전자는 현재 분사형이므로 계속적으로 듣는 것을 가리키고, 후자는 부정 과거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받아들인 사실을 표시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 일행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성심 성의껏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토록 말씀을 높이 평가하였던 것이다.⑦ 그와 같이 받아들여진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히 4:12).
여기에 사용된 역사하느니라는 에네르게이타이(ἐνεργείται)로서 “일에 착수하다”(Robertson),⑧ ‘힘을 발휘하다’, ‘활동하다’,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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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자의 갈라디아서 1:8의 주석을 보라.
6) 저자의 갈라디아서 1:12의 주석을 보라.
7) M. Henry, “Lightfoot”(in R. L. Thomas, p. 233), J. E. Frame, R. L. Thomas, p. 233, A. J. Mason, 宮村武天.
8) in A. E. Air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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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효과적으로 행하다’를 의미한다(고전 12:11, 갈 3:5, 빌 2:13, 3:21).
인간의 심령 속에 받아들여진 말씀은 그 인간의 영혼을 회개시키고, 마음을 밝히며, 기쁨과 평화를 주며, 또한 성공 및 승리의 삶을 가능케 해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원동력이고, 최대의 사랑이며(요 1:14, 시 119:105), 생명의 양식이고(시 119:93), 영적 무기이며(엡 6:17), 만사형통의 비결이기(여 1:8) 때문이다.


출처: 최세창,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서울: 글벗사, 1999, 2판 1쇄), pp. 446-448.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7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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