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성서이해 5 “숨겨진 진실 예수 그리스도”(눅 2:8-14)

최은석
  • 1570
  • 2019-11-29 06:35:48
1. 개그콘서트에 보면 불편한 진실이라는 프로가 있는데 잘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아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셔야 됩니다. 자기 나 사랑해? (나 지금 사고 싶은게 생겼어)/ 여보, 나 얼마만큼 사랑해(나 오늘 일 저질렀어)/ 여보, 쓰레기 봉지가 꼭 찼어요(쓰레기 좀 버려주어요)/나 화 안났어요(당연히 열 받았지, 이 멍청아)/ 맘대로 해(맘대로 하기만 해봐라)/ 차에 먼지가 많더라(빨리 나가서 세차나 해요)/ 부엌이 좀 불편한 것 같아요(우리 좀 이사좀 가요)/ 우리 예기 좀 해요(지금 얼마나 불만이 있는지 알아)

맞나요, 아내들의 말은 깊게 새겨 들어야 합니다. 그냥 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 알고 계셨는지요.

그런데 아내들의 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진리라는 것 늘 숨은 그림처럼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아는 깨달음이 주어졌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야기를 듣고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눈을 떴으나 하나도 보지 못하고 귀가 열렸으나 하나도 듣지 못한다(눅 8:10)’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비유로 말씀 하시면서 어떤 사람은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듣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라 하셨는지요. 다시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지요.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아는 깨달음이 주어졌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안다. 그러나 이 선물, 깨달음은 누구한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누구든지 준비된 마음이 있으면 언제라도 깨달음과 이해가 막힘없이 흐른다. 그러나 준비된 마음이 없으면 깨달음은 흔적도 없이 금세 사라진다. 내가 이야기로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마음을 준비시키고 마음을 열어 깨닫도록 주의를 환기 시키는 것이다(마 13:11-14)’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이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준비시키고 마음을 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만난다는 것,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단순히 앎이라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지혜는 마음을 열어 안정된 가운데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대학(大學) 1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그렇습니다. 숨은 그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머무를 곳을 올바로 찾은 자에게서, 마음의 바름을 통하여 고요함을 유지한 가운데서 드러나는 생각 가운데 보여지고 들려지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진리는 도리어 이렇게 고요함을 마음속에 간직한 자에게 더 잘 보이는 것이고 더 잘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비밀을 감추어 두지 않고 오히려 말할 것이다. 숨기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낼 것이다(눅 8:17)’

이 뜻 중용(中庸)의 말과 어울리지 않는지요.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성탄절은 어떻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 그러면 캐롤을 생각하고 선물과 백화점 할인 행사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조금만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말씀 앞에 가까이 서면 보일 수 있는 진리를 숨겨 놓았습니다. 캐롤과 선물, 각종 행사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신기루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성탄절에는 먼저 마음을 열어 말씀 앞으로 내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숨겨져 있는 보화를 캐내었으면 합니다. 그 때 여러분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성탄절에 한 몫 챙기려는 불편한 진실같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처음 성탄절에는 숨겨진 아름다운 진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면 숨겨진 아름다운 진실을 찾아 첫 번째 여행을 떠나 보지요.

‘근처 들에서 목자들이 밤을 새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 가운데 서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두루 비추었다. 목자들은 두려워 떨었다. 천사가 말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여기 온 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놀랍고 기쁜 사건을 알려주기 위해서다(눅 2:8-10)

맨 처음 성탄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왕도, 제사장도, 무슨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당시 별로 좋은 계층이 아닌 목자들이었다는 사실, 불편한 진실일까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첫 번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려 줄 사람들을 찾으시다가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목자들, 하지만 마음이 겸손한 목자들이 첫 번 성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유능한 율법학자들이 있었고, 제사장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경건한 삶을 산다고 자부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는 아무도 성탄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도 왕이 탄생한다는 소식인데 지방 신문 보다는 중앙 일간지에 나와야 빨리 전해지지 않는지요. 케이블 TV보다는 공영방송에 나와야 됩니다. 실제적으로 들어야 될 사람이 들어야지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은 들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아이가 방문을 닫아걸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하나님 우리 아빠가 저에게 이번 성탄절에 자전거를 사주도록 해 주세요’이 때 할머니가 그 방 앞을 지나다가 꼬마에게 물었습니다.‘예야!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니? 하나님은 귀가 먹지 않으셨단다’이 때 손자가 하는 말‘그래요! 하나님은 귀가 안먹어 다 들으시지만 우리 아빠는 못 들으시거든요’

이 당시 목자는 천대받은 직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양이나 염소를 데리고 몇날 며칠을 야외에서 숙박을 해야 됩니다. 가끔씩 맹수들을 만나면 싸워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목자들 그러면 멀리서만 보면 사나와 보였습니다. 얼굴도 울그락 불그락하고 말씨도 거칠고 하여튼 사람들이 보기에는 왕의 탄생 소식이 전달되기에는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왕의 탄생을 알리는 첫 소리가 이것인데 이 소리를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자 안에 성탄의 숨겨진 아름다운 진실이 있다는 것 아시는지요.

누가복음의 성탄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탄의 메시지를 처음 들은 사람들이 목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123장「저 들 밖에 한 밤중에」이 찬송가 가사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목자들은 가난하고 검소한 사람들입니다. 한 밤 중에도 양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잠도 편하게 자지 못하고 양들 틈에서 자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양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는 동시에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양들의 생명을 지키고, 양들을 돌보면서 목자들은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목자는 양 한마리 한 마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목자로 살 수가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양 한 마리를 겸손하게 섬길 수 있는 사람만이 목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도 목자가 대우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쓰신 사람들 중에 목자의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때도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목자의 삶을 배우게 했습니다. 야곱 역시 삼촌의 집에 20년을 머물면서 양을 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목자의 삶을 살면서 양을 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시편 23편을 보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또한 에스겔이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40:1)’

요한은 예언합니다.‘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 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목자들을 통하여 들려진 기쁨의 좋은 소식! 바로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보여 주기 위한 아름다운 진실이 담겨져 있지는 않을까요!. 누가는 단순히 양들을 지키는 목자를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목자 되시는 주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금년도 성탄절 때에는 이 아름다운 진실인 목자들이 들었던 그 기쁨의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요 10:27)’

우리는 다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목자의 지팡이를 따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다. 바로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이제 숨겨진 아름다운 진실을 찾아 두 번째 여행을 떠나 보지요.

‘방금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메시야요 주님이시다(눅 2:11)’

성탄의 소식이 들려질 장소를 목자들은 천사들을 통하여 이렇게 듣습니다. 그곳은 다윗의 동네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무엇이라고 해야 맞을까요. 다윗의 궁궐이라고 해야 격이 맞을 것 같은데 동네라 하니 불편한 진실일까요! 그렇다면 우리 다윗의 동네가 어디인가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삼상17:12)’

다윗은 처음부터 궁궐에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본적이 어디다!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것입니다. 이 베들레헴! 언제 처음 등장하는가 하면 야곱의 아내인 라헬의 무덤이 있던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또한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어디 사람인가 하면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실 메시야를 알려주는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구약성경에서 베들레헴이라는 동네는 아주 작은 곳입니다. 우리 나라로 한다면 리 정도밖에는 안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늘 예언되기를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하면 크다라고 합니다. 영원하다고 합니다.

다윗은 목자였고 그가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이 뜻 안에는 무엇이 숨겨진 진실로 담겨져 있는 것일까요, 바로 목자 되신 우리 메시야의 영원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에게! 저 베들레헴! 떡집이라고 하는데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떡 팔아서 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곳에 무슨 메시야가 나타나! 무슨 왕이 나타난다고 그렇게 예언해! 아무도 믿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롯데가 껌을 판다니까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껌 팔아서 언제 부자가 될까! 그런데 잘 보세요. 롯데그룹 사실상 껌 팔아서 부자 된 것입니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 아주 초라한 시골마을! 그러나 그곳은 이런 아름다운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구원한 왕이신 메시야의 통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왕성하던 시대가 다윗 왕조 때 인 것처럼 오실 메시야의 시대는 왕성하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왕조는 미가가 예언한 대로 영원할 것이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6)’

위대한 목자가 태어나리라는 진실이 바로 다윗의 동네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 아름다운 진실임을 기억하며 오실 메시야의 나라를 기대하는 믿음의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4. 숨겨진 아름다운 진실을 찾아 세 번째 여행을 떠나 보지요.

‘너희는 가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찾으라(눅 2:12)’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라고 합니다. 구유(는 말의 ‘밥그릇’ 을 말합니다. 소 여물 주는 나무로 만든 통이 바로 구유입니다. 짐승의 밥 그릇, 상상만 해도 더럽고 추한 곳이지요. 냄새도 나고 여러 오물도 섞여져 있습니다. 그런 곳에 아기가 있다니! 도저히 상상히 나지를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섬기는 예수님이 짐승의 밥 그릇인 여물통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구유속에 누인 아기! 불편한 진실일까요!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하면 짐승에게는 구유가 생명입니다. 만약 겨울 같은 때 밖에 나가서 풀을 못 먹었을 때 구유에 먹을 것이 없다면 굶어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보니까 여물을 제 때 먹은 소는 건강하지만 주인이 제 때 여물을 안주거나 가끔씩 먹은 소는 비실비실합니다.

짐승의 밥 그릇에 누워 게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중요한 것은 밥그릇에 담겨져 있는 것이 양식을 넘어 생명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누구라는 것입니다. 바로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51, 53절을 보면‘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세상에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양식임을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그 어떤 곳으로도 이 영을 채울 수 없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을 채울 수 있는 양식이라고 예수님 스스로가 말씀 하신 것입니다.

짐승들의 먹는 밥 그릇, 냄새도 나고 더럽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은 더 더럽지요. 더 추합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구원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유에 누이신 왕이신 예수! 그 안에 숨겨진 그러나 아름다운 진실은 바로 생명의 양식입니다.

첫 번 성탄은 변방에 살던 목자들에게 목격되었고 아주 작고 초라한 시골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타났고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 가운데서 알려 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불편한 진실처럼 느끼며 성탄의 진실을 치장하며 꾸미며 세상의 이벤트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올 성탄은 첫 성탄 가운데 숨겨져 있는 진실을 캐내기 바랍니다. 친히 이 땅에 오사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목자로서, 이 세상 만물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그리고 하늘의 아들을 버리고 이 땅에 오사 세상의 생명이 되고자 하시는 구원자로서 다시 보여지고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5.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탄의 소식은 언뜻보면 그냥 별볼일 없는 일이 될 뻔 했지요. 그냥 흘러가는 간단한 소식으로 끝나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면서 독자들을 향하여 숨은 그림 찾기 처럼 말씀 가운데서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왜 이것이 잘 안보였는지요! 눈이 어두워서요! 아니면 성경을 보는 방법이 미숙해서요.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본문을 향하여 마음을 열면 보입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생각을 넘어서서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면 그 안에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지요. 아마 성경이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들려지게 되었지만 한번도 고갈되지 않고 계속 말하여지는 것은 바로 마음의 눈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이 번 강림절 기간에는 여러분의 생각의 넓이가, 생각의 깊이가 좀 더 풍성해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여러분의 입에서, 마음에서 울려 퍼졌으면 합니다.

‘말들이 넘치면 그 말들은 언젠가 깊은 우물속의 어둠에도 이를 테니까 (김연수 「깊은 밤, 기린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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