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미학적 성서이해 6. ‘그리움은 흔적을 남기고’ (요 14:16-21/ 요 21:1-7)
최은석
- 1624
- 2019-11-29 06:40:57
1. 강가에서 태어난 자가 그곳을 떠나 있어도 늘 강물을 그리워 하는 것처럼, 산에서 살았던 자가 그곳을 떠나 있어도 산내음새를 그리워 하는 것처럼 우리는 늘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의 대상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누구나 말은 하지 않지만 그 그리움이 그리움 그 자체로 끝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가수 자우림은 ‘봄날은 간다’ 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 그리움을 놓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오늘도 나는 그 그리움으로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의 여정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가 여전히 미지수 이지만 말이다.
2. 가장 의지했던 대상이 사라지는 상실의 아픔, 그 아픔의 시간은 겪은 분들만 알 것이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 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살아 남은 자가 치루어야 될 몫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옥한 삶의 환경들이 여전히 있다. 옛말에 든자리는 표식이 없어도 나간 자리는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이 머물고 간 자리에는 깊은 흔적이 남고, 때로는 상처도 남는다. 그래서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 것! 그가 남긴 흔적, 여백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시인 고정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예수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3년 동안 키운 제자! 어부를, 세리를,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데려와 이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주님은 아셨다. 당신이 떠난 후 제자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 배반으로, 숨음으로, 도망으로 얼룩져 버릴 제자들의 삶!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어디 가든지 그들과 함께 하겠다 지금 말씀 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그들에게 무엇을 주겠다 말씀 하고 있는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가 말한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분을 소개해 주겠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 분을 보혜사라 설명한다. 보혜사라는 말은 ‘다른 누구 옆에 같이 서 있어 주는 자’라는 뜻의 희랍어 ‘파라클레이토스’이다. 보혜사라는 단어가 한문이고 어려운 감이 있어서 표준 새번역의 아래 난외주에는 ‘변호해 주시는 분’ ‘도와주시는 분’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 왜 보혜사 성령이 등장했는가? 예수는 스스로 십자가를 질 것을 알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마지막 까지 당신의 사랑을 전하고 계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어리석고 무지한 제자들이 너무 걱정이 되신 것이다. 내가 죽고 난후 저들을 지켜 줄 자가 누구인가? 저들을 보호해 줄 자가 누구인가?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했는데 진짜 제자들이 고아가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걱정을 주님은 잠재우듯이 지금 그들과 늘 함께 옆에 계시며 그들을 보호해주며 인도해 줄 분 바로 성령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전 앞으로 당신을 그리워할 사람들에게 당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다. 그리고 그 성령이라는 흔적을 통해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씀 하고 있다.
박형준 ‘가구의 힘’ 중에서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가구란 그 집의 기억을 담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 과연 예수를 향한 기억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과의 그리움을 찾을 수 있는 흔적들을 만들고 있는가.
3. 2000년 전 어느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다. 3년 동안 고향 떠나 객지 생활을 했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어느 날 찾아 온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회오리 바람이 불었고 그 사람을 쫓아 여러 가지 곳을 다녔다.
바닷가에서 산으로, 산에서 도시로, 생각해 보니 여러 지명 들이 생각이 난다. 갈릴리, 여리고, 가버나움, 예루살렘, 골고다. 그리고 사람들이. 처음부터 함께 한 형제 안드레, 야고보, 약간 말 다툼은 있었지만 생각이 나는 요한, 그리고 도마 그리고 내 인생의 시간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그 분!
외지에 나가 살면서도 그는 그 바닷가를 잊지 못했다. 작은 배가 아침 일찍 통통거리고 항구를 벗어나는 소리, 지난 밤 만선을 바라보며 떠났던 배들의 귀향소리, 그리고 그물 씻는 소리, 어부들의 한숨 섞인 소리, 아낙네들의 왁자지껄 큰 소리! 그 소리가 그리웠다.
그래서 찾아 온 바닷가다! 그래도 내가 옛날에 이 바닷가에서 잔뼈가 굻어진 몸인데 하며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왕년의 실력을 보여 주겠다고 자랑스럽게 고기 잡으러 가자 외쳤지만 예상이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밤새워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힌 것은 없고 마음속에는 너 어떻게 된 것이니, 너 왕년의 실력은 다 어디 갔어 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아마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고향도 나의 마음을 못 알아주다니, 그래도 내가 고향에 오면 마음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난 3년 동안 내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는데!
그는 바닷가 한 모퉁이에서 올라오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불그스름 올라오는 태양! 그러나 그의 얼굴은 전혀 그 떠오르는 태양을 의식하지 못하는지 고개를 떨구고 자신 발 앞에 놓여진 텅 빈 그물만을 보고 있다. 텅 빈 그물을 바라보며 지난 3년 그리고 그 분이 내곁을 떠난 몇 개월 동안의 자신을 바라본다.
김용택 ‘사랑’ 중에서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몹시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김용택의 ‘사랑’ 이라는 시 처럼 그의 마음을 어디다 둘 데 없어 물끄러미 그물을 바라보고 있다.
4. 그런데 또 한 분이 그 바닷가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이 아침 그 바닷가에 서성거리고 계셨다. 그러면서 그 분도 그 옛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 바닷가에서 게네들! 만났지, 철없던 녀석들, 고기잡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들, 왜 그렇게 입은 걸쭉한지 나왔다 하면 욕이고 성격은 왜 그래 급한지! 그 분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 때 그 친구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서성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 분! 그런데 그 분이 이 바닷가에 온 것은 실은 그 바닷가가 그리워서 온 것이 아니었다. 항구 소리, 바닷내음새가 그리워서 찾아 온 것도 아니었다. 그 분이 그리웠던 것은 친구들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사랑을 쏟았던 친구, 3년 동안 같이 한솥밥을 먹던 그 녀석들이 그리웠다. 아니 까맣게 뜬 눈으로 그들을 기다렸을 지도 모르겠다.
김용택 ‘봄밤’ 중에서
‘말이 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는 줄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는 나오지 않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봄빛처럼 야위어가고 말을 잃어버린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봄바람처럼 메말라갑니다’
아마 이 마음이 그 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분은 한편 이런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그 놈들! 내가 나타나면 놀래 자빠지겠지! 아니 도망가는 놈들은 없을까, 허허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이 놈들을 만날까! 그 분의 마음속에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쁜 놈들, 제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뻔뻔한 놈들을 향하여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멀리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때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놈들에게 그래도 무엇인가 선물을 주어야겠다 생각을 하시고 고기를 잡지 못해 시름에 젖어 있는 그들을 향하여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된 것이다. 그 분은 물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바라 보면서, 그리고 좋아하는 그 놈들의 표정을 보며 허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놈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네! 고기가 뭔지 그것 좀 많이 잡혔다고 저렇게 좋아하니! 얼마나 고기가 그리웠으면 저렇게 좋아해.
그 분은 마음이 너무 좋았다. 그래도 나타난 보람이 있구나! 그 놈들 이것이 누구 덕인 줄 알까! 3년 동안 같이 다닌 나를 몰라보지는 않겠지! 그 분은 떠오르는 태양 속에서 감추었던 얼굴을 한 부분씩 보여 주셨다. 처음에는 어슴푸레 보여 주시더니 목소리를 알려 주셨다. 그리고 얼굴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의 십팔번인 두 팔을 벌리며 예들아! 나다 하며 자신을 보여 주셨다.
5. 이 때였다. 텅 빈 그물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저 목소리! 그 분 목소리인데, 그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저 옷! 그 분 옷자락이 분명히 맞는데! 갑자기 눈을 뜨고 귀를 세웠다. 그리고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의 눈을 들었다.
그랬더니 그곳에 그 분이 계신 것이다. 지난 3년 전에 내 인생 전체를 뒤바꾸어 주었던 그 분, 나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신 그 분이 그곳에 계셨다.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가슴이 떨렸고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갈릴리 호숫가에 함께 마주 한 베드로와 예수님! 갈릴리 바다로 다시 어부가 된 베드로! 그런데 그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수제자인데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갔으니. 그런데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니 얼굴은 어떻게 들고!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나는 것이다. 너는 도망갔던 놈이야! 닭 울기 전 세 번 주인을 모른다고 부인한 자야! 막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니 할 말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주님은 어떠신가? 그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그의 아픔을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아가페의 사랑을 요구하는 예수님에게 필리아의 사랑 즉 인간의 사랑으로 고백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스스로 낮추어 베드로에게 다가오고 계신다.
6.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삶에 나타난 여러 흔적들을 지우라는 것이 아니다. 통곡하라는 것이 아니다. 폐기 처분하라는 것이 아니다. 잘 보라! 만약 좋았던 것이든 나빴던 것이든 그것은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옛날 고향을 그리움으로, 옛날 다녔던 바닷가를 그리움으로, 옛날 잡았던 물고기를 그리움으로 찾아 간 시몬 베드로! 그가 왜 그 바닷가에 서성거렸는가? 지난 삼년은 그의 인생에서 보면 긴 시간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로 큰 소득도 없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처 투성이, 아픔의 시간이 지난 3년이었다. 아마 그가 바닷가를 바라보며 생각한 것은 바로 3년이라는 시간에 나타난 생채기들을 보려 했을 것이다. 고향과 바다 한 가운데 드러난 그리움의 일상을 더듬어 보려 하지는 않았는가!
그런데 시몬은 몰랐다. 바로 그 상처와 갈등, 아픔으로 비어져 있는 3년이 바로 행복의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이 떨어져 있음으로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
갈릴리 호숫가에 서로 얼굴을 보고 있는 시몬과 주님! 세상말로 한다면 못 볼 존재이다. 한 사람은 자신을 죽여 그를 살리려 했고 한 사람은 그를 살리려 죽은 스승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다.
그러나 오늘 그들의 영혼에 드리워진 그리움은 동일했다. 스승인 주님은 시몬에게 다시 한번 사랑으로 그 영혼의 아픔을 치료해 주기를 원했고 시몬은 주님에게 자신의 영혼의 따뜻한 봄날의 그리움을 보여 주며 그 분의 품에 안기기를 원했다.
이성복 ‘이별 1’ 중에서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그렇다! 그 분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 떠나는 것은 나다. 그리고 그 분은 계속해서 나를, 우리를 그리워한다. 결코 주님과 우리는 이별 할 수 없다. 떠나 보내면 보낼수록 그리움 가운데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사랑 쓸쓸함에 대하여’ 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세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내가 살고 있다는 것, 그 사랑 때문에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오늘 당신이 행복한 것은 이 그리움이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규원 ‘당신을 위하여’ 중에서
‘당신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게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한 이유는 잃어버린 그것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