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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 풍성한 삶은 무엇인가!(12.8 주일낮 설교요약)
오세영
- 1966
- 2019-12-10 07:12:26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풍성한 삶의 본질을 수많은 세월을 오해하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서적으로 그 풍성한 삶의 의미를 정리하기도 어려웠지만 성서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해도 풍성한 삶의 본질대로 살아 내거나 말씀을 증거 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육신의 풍성함을 얻었습니다.
선지자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부자가 되거나 권세를 얻거나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구약 식으로 이해한다면 육신의 풍성함을 말씀하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육신의 풍성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 자신도 육신적인 풍성한 삶과는 무관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권세와 명예 뿐 아니라 당대의 최고 지식을 가졌음에도 그 지식이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삶과는 정 반대가 되는 핍박과 매 맞음과 굶주림과 추위 또한 옥에 갇히기를 여러 번 하였고 마지막은 순교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2사도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약의 교우들 에게도 동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분명 신약에서 말하는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이해하고 그 풍성한 삶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 볼까요?
성서에 나와 있는 사람 중 육신의 풍성한 삶을 가장 추구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행복한 삶을 꿈꾸며 파랑새를 좇았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여섯 만났다는 것은 끝없이 행복을 찾아 다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남편도 진정한 남편이 아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이 주님을 통하여 풍성한 삶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하신 말씀대로 그 여인은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풍성한 삶의 내용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살전5:42)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본질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하셨던 그 때는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그 밤은 붙잡히기 전날 밤이었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거기에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배반하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도망을 갈 것을 아셨고 가룟 유다는 배신을 결행하는 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 기쁨이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던 것이라면 풍성한 삶의 본질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신 말씀도 마지막 유월절 만찬 때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담대히 이기라 하심으로 풍성한 삶은 환란 가운데서도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22)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제자들이 본격적인 환란을 당할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제자들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기뻐하며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삶 속에서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막을 법이 없는 것임을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삶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유일하게 신약 적으로 풍성한 삶을 고백한 사람이 있다면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하여도 오직 여호와로만 기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고백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누가 이러한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으로 부터 꼴을 얻는 자입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이시며 양의 문이 되시는데 이 문을 통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양들은 꼴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목자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꼴을 먹는 양은 풍성한 삶을 얻게 됩니다.
수가성 여인도 이 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도바울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 마다 주님이 주시는 꼴로 인하여 풍성한 삶을 얻게 됩니다.
이 꼴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 66권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꼴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과 지옥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무궁무진한 주님의 꼴을 먹게 됩니다.
이러한 꼴을 얻었는데 풍성한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