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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이고 웨슬리적인 교회의 신학
현종서
- 1992
- 2020-01-02 18:29:36
우리의 그동안의 신학에서도 4차원진리를 3차원의 학문(science)세계에 소개하려다 보니, 자신이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 세계의 경험에 대해서는 “신비” 또는 “신비주의”라 이름붙여서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창고에 넣어 두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학은 교회의 학문이라 말함으로서 칼 바르트는 신학의 분야는 일반 자연,인문과학이나 철학의 분야와 다른 분야임을 밝혔다. 일반 이성과 감성으로 잘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해도 그들의 잣대,소위 이성을 가지고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게 되고 영적인 감각이라는 특수 감각을 가진 이들의 특수 분야(영적 진리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로서 교회의 학문이라 한 것이고, “교회”란, 단순히 어떤 뜻을 가지고 모인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정치적 결사체나, 취미가 같아 모였거나, 어떤 친교나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닌 것이다. 교회(ekklesia)라 불리우는 모임체는 그 뜻이 일반적인 단체와 성격이 달라 다른 영적,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간략히 정리 해 본다면, 일반 모든 인간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특별히 부르시어, 불리움 받은 무리들이고, 그들은 복음을 듣고 믿고 받아들인 이들로 새 생명을 받은 이들이고 신분과 소속이 달라진 이들이고, 새로운 영적인 감각이 깨어나고 새로운 교제의 통로가 열린자들이고 자기 혼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부르신 자와의 대화속에 그 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인 것이다. 신학은 그러한 자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이다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 들인적인 없는 자라면, 교회의 일원이 아니므로 애시 당초, 신학이라는 학문을 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교회의 일원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인자이고 그 주님은 부활하신 분이고 성령으로 믿는 자의 심령속에 들어와 주인노릇하실 분인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외에 자신과 하나님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다른 중보자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본질적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된자들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다른 중보자를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는 자는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을 통해 받아들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성경을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의 책으로 믿지 않는 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다가도 다른 종교의 다른 중보자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그는 이미 성경이 가르치는 유일한 구주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며, 교회(제도적인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영적인 교회) 밖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교회의 학문인 신학을 하는 자가 아니라, 교회밖의 종교학이나 철학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시었는데(이것은 욕심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보여주신 사랑으로서 그것을 아는 자에게 요청하는 당연한 요구),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이 되는 까닭인 것이다.
하나님은 대화적 인격의 소유자이시지 어떤 고상하고 도덕적인 이념이 아니시다. 사랑의 속성이 있으시지 사랑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할 수 있으나 "사랑"은 하나님이시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감리회 신학대학교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충분한 표준으로 믿고 있는 웨슬리의 후예들”을 길러 내는 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 반성경적이고 반 웨슬리적인 다원론적 구원론(그리스도밖에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른 중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설)을 받아들여, 아직도 교단에서 축출당한 교수들의 “도상의 신학”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게 아니라 그들이 가르친 신학을 넘어서(수정, 교정, 보완) 발전시켜야 한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메시야됨을 증언하기 위해 자기들의 생을 내어 놓았듯이 ) 신학자들은 모든 교만한 이론들을 그리스도의 발앞에 무릎 꿇려야 한다. 교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던 그때의 그 이론을 그대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교회의 학문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 밖의 철학이나 종교학이나 정치학을 하는 이라 볼 수 있고, 자칫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의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위험속에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