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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배 설교(12. 29 주일 낮 설교요약)
오세영
- 2884
- 2019-12-30 21:50:37
선한 싸움 다 싸우며 달려 갈길 다 달려갔기에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되리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참으로 위대한 한 신앙인이 노래하는 승리의 개가입니다.
사십에 한 대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던 바울, 옥에 갇히고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헐벗음의 생활로 점철되었던 그의 삶을 그는 끝까지 잘 달려갔던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일 년을 뒤돌아보면 한 해 동안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험악한 나그네 인생길이라고 표현 했듯이 과연 험악한 세월이라고 할 수 있는 1년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하기에 평생을 돌아보면 험악한 인생길이라고 누구나 말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생길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 다가며 믿음을 지키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신자가 가야하는 믿음의 길을 비유로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길이기에 위험하고도 어려운 길이 됩니다. 마치 소돔성에서 급하게 밀려 나온 롯의 가족이 산을 향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롯이 앞만 바라보고 가야했던 그 길은 분명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진리의 길이며 좁은 길 생명의 길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길이 믿음의 길이기에 우리는 바울처럼 잘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달려왔지만 우리는 저 천성을 향하여 새해에도 달려가야 합니다.
잘 달려가기 위해서는
1) 날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선한 싸움은 자신과 죄와 세상과의 싸움을 말합니다.
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치우치는 것은 죄에 빠지는 것인데 마치 벧세메스로 법궤를 싣고 올라갔던 암소 두 마리처럼 우리는 일직선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암소 두 마리가 수레를 일직선으로 끌지 않으면 블레셋 땅에 내렸던 재앙이 여호와께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암소 두 마리는 새끼가 있어 젖이 나고 있었고 수레를 한 번도 매어 보지 않은 소들입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고삐 잡는 사람도 없이 보조를 맞추며 일직선으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간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마침 밀 익는 계절이어서 밭에 밀이 있어 젖먹이는 암소들을 유혹하고 있고 뒤에서는 새끼 송아지가 울고 있어 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처음 멍에를 매는 암소들이기에 더욱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암소 두마리와는 달리 우리는 수없이 도랑에 빠지고 좌우에 있는 밀들을 먹기 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쳤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은 얼마라도 일직선으로 걸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 날을 기대하시며 지금까지 나를 용서하시며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육을 가진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시는 것입니다. 미물인 암소 두 마리에게도 하나님이 강력히 역사 하셔서 그 일을 이루셨는데 사람인 우리에게는 더욱 쉬운 것입니다.
3) 법대로 경주해야 합니다.
달리는 자가 법대로 달리지 않으면 상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 안에 모든 율법이 완성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됩니다. 그것이 선행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의 의나 이름을 내기 위한 선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4)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달리는 자가 전심전력하지 않으면 이 또한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첫 계명이며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즉 결론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 첫 계명을 누구나 지키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