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지에서

이경남
  • 1333
  • 2019-12-28 22:17:08
칠곡지에서
-이경남

고성산 계곡물을 막아
칠곡지가 되었다
비록 낮기는해도
주변이 온통 숲이다보니
이곳도 한때는 꽤
맑고 호젓한 호수였으리라
그러나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고
이제는 레스토랑이며 까페며 호텔이며
거기다가 낚시터까지 들어선 지금
이 호수는 더 이상
우리가 찾고 싶은 호수가 아니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고급 주택의 거실에서
누구는 이 호수를 내려보는 호사를 누리고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도
이 수변 까페에서 무드에 취하지만
그러나 정작 이 작은 호수는
이들이 쏟아내는 오폐수를 받아내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래도 물이 한결 맑아지는 지금
호수 위에서는 오리 떼 한 무리가 유영하며
제법 한적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이미 죽어 넘어간 물고기들의
시신 또한 가득한 이 호수는
더 이상 살아있는 호수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 호수가 좋아 이곳으로 모여 들면서도
정작 이 호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마치 아리따운 여인이
사랑없는 쾌락의 물을 받아내다
결국 황폐하게 죽어가듯
이 호수도
그렇게 망가지고 죽어가고 있다

2019.12.28. 토요일 아침 칠곡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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