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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신학)의 오류와 고전 8:4-6
최세창
- 1975
- 2020-01-03 23:34:43
“그러므로”(운, οὖν)는 “앞의 삽입구에 의해서 끊어졌던 1절의 주제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사용되었다”(C. Hodge).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은, 1절 전반의 대략적인 표현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함이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는, 일반적으로 고린도 교회의 편지의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ὅτι οὐδὲν εἴδωλον ἐν κόσμω,)는 ‘우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①로도, ‘우상은 세상에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②로도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는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οὐδεὶς θεὸς가 ‘신이 없다’를 의미하므로 οὐδὲν εἴδωλον은 ‘우상이 없다’를 의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교도의 신들이 실재가 아니거나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10:20에서 바울이 우상들은 귀신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에는 이교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실재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쥬피터(Jupiter)나 주노(Juno)나 마르스(Mars) 등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C. Hodge).
구약성경에서는 이교도의 신들이 빈번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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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H. Alford, “Meyer, Hofmann”(in 이상근), J. A. Bengel, C. Hodge, F. W. Grosheide, W. H. Mare, R. C. H. Lenski, W. Carter, W. F. Orr and J. A. Walther, p. 232, A. Robertson and A. Plummer, L. Morris, M. E. Thrall, D. S. Metz, 內村鑑三, 米田豊, 김용옥.
2) J. Calvin, “Luther, Beza, Godet”(in 이상근), J. Wesley,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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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것들, 거짓 것들 등으로 언급되었다(사 41:24, 44:8, 렘 10:14, 시 96:5, 115:4, 8).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은, 유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외웠던 신앙 고백의 내용이다(쉐마: 신 6:4, 사 44:8, 45:5). 이 유일신 신앙은 그대로 교회의 신앙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의미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5절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모든 이방인들이 신들이나 주들로 알고 믿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종교들마다 숭배하는 신들과 주가 다르나, 대체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과 하나님(신)의 피조물(인간, 자연)로 대별할 수 있다.
바울은 신이 아닌 것들을 신으로 믿고 섬기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고 하고(갈 4:8), 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도 하며(롬 1:23),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고 하였다(롬 1:25).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5:10의 주석을 보라.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는,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을 아노라”와 같은 뜻이다. 그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1:3의 주석을 보라.)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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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타 판타(τὰ πάντα)로서 인류를 포함한 피조물들 전체를 뜻한다.
“그에게서 났고”는 만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행 17:25, 롬 11:36). 즉,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를 위하며”는 우리의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의미의 유일무이한 우주적 구원자(행 4:12)인 “주”(1:2의 주석을 보라.)이시라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14:8-9)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그는 우리를 소유하시고 사랑하시며 돌보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우주에 대한 주권을 인식하고, 또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통치자로서 소유하고 신뢰하고 복종하고 사랑하고 예배한다(엡 1:2, 3, 15, 17, 2:21, 3:11, 14, 4:11 등. cf. 6:13-15, 20, 7:23, 12:3, 5, 빌 2:11, 벧전 1:18, 19, 계 19:16)”라고 설명하고 있다.}(엡 4:5의 주석).
그는 또한 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와도 관련되는 것에 대해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있어서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도 중보자이셨다는 것이다(요 1:3, 골 1:15-19. 참조: 히 1:2).
성부와 성자는 그들의 활동 영역인 창조와 구원에서가 아니라, 주도권자와 중보자로서 구별된다.
출처: 최세창, 고린도전서(서울: 글벗사, 2001, 2판 1쇄), pp. 24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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