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로마서 1:16) :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니?

최세창
  • 2270
  • 2020-01-18 02:06:37
앞 구절(15절)의 이유(16절의 원문 첫 부분에 가르, γὰρ가 있다.)에 대해, 바울은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복음”(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 1:1의 주석을 보라.)은 A, B, C, D, E, G, 17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K, L, P 사본 등에는 “그리스도의”(τού Χριστού)가 첨가되었으나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바울의 설명은 로마 또는 로마 교회를 비롯하여 어떤 상대에 대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점과 관련하여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라고 하였고, 더욱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왕이나 총독은 물론, 어느 누구 앞에서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다(행 26:24-).
그는 그 이유(원문에는 가르, γὰρ가 있다.)에 대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믿는 자에게”라고 한 것은 복음이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긴 하나, 그 구원의 능력은 믿는 자에게만 소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3:16, 엡 2:8, 살후 2:13, 벧전 1:5).
그러므로 “믿음(1:5의 주석을 보라.)은 복음의 조건이요”(J. A. Bengel) “요구이다”(K. Barth).
“구원”은 소테리안(σωτηρίαν)으로서 “그 기본적 사상은 생명에 대한 위협적인 위험을 제거하여 그 생명을 자유롭고도 건전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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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유리한 조건 속에 두는 것이다.……(1) 구약성경의 초기 책들에서 구원은 단순히 신체적 위험으로부터의 해방이다(삿 15:18, 삼상 11:9, 13 등). (2) 그러나 이 낱말은 더욱더 민족의 대 구출 또는 해방에서 적합해지는 경향을 갖는다(출 14:13, 15:2, 사 45:17, 46:13, 52:10). (3) 자연적 변화에 의해 그 낱말은 메시아적 구원 또는 해방과 결합되었다(하급 형태의 유대적 메시아 대망과 보다 더 높은 형태의 기독교적 소망<행 4:12, 13:26 등>). 기독교적 의미에서 구원은 메시아적 해방의 전 영역, 즉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온 세상이 놓여 있는 진노로부터의 구조(롬 1:18-)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영생을 부여하는 것(막 10:30, 요 3:15, 16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양편은 이미 최초의 현존하는 서신에서 결합되어 있다(살전 5:9, 10)”(W. Sanday & A. C. Headlam).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원이란 말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역설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죄와 죽음의 운명에서 이미 해방되었지만(롬 6:7, 18, 고후 6:2, 갈 1:4, 엡 2:5, 8), 죽음 이후 또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뤄질 최후 심판에서의 구원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롬 5:9, 고전 3:15). 미래에 성취될 구원, 즉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고전 15장)은 현재의 영적 구원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는다. 지금 여기서 신자는 영적 생명을 맛보며 사는 것이다(요 3:36, 5:24, 6:51, 17:3, 딤전 1:16, 6:12, 요일 5:13).
“하나님의 능력”의 “능력”은 뒤나미스(δύναμις)로서 고전 헬라어에서는 ‘자연적 힘’을 의미하였고,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또는 ‘속성으로서의 힘’(본절, 눅 1:17, 행 3:12, 고전 1:18), ‘능력 있는 행위’, ‘이적’(마 11:20) 등을 의미한다.
여기의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영원한 능력을 의미한다. 그 능력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고, 귀로 듣지 못한 것이며, 또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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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복음을 부끄러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K. Barth).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인 복음이 미치는 순서와 중요성에 대해, 바울은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다. 복음이 우선적으로 유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다음에 이방인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은 성경 곳곳에서 주장되었다(행 1:8, 눅 24:47, 요 4:22 등). 특히, “바울로는 구원 계획의 연속성 때문에 유다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였다”(E. Ksemann).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구속사의 질서이다”(전경연).
아무튼,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척하였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현대 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닌게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헛된 것이 되게 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 2판 1쇄), pp. 78-81.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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