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 선생님

도현종
  • 1314
  • 2020-03-06 18:54:08
충신 황현의 눈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리워진다. 역사의 평가에는 공소시효가없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않고 오로지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 , 백이열전」진지한 물음 앞에서 황현은 분명하게 답을내린다.

황현은 비통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하룻밤에 절명시 넉 장을 지었다. 지독한 근시임에도 순국 전까지 일만권의 책을 읽어낸 애린(愛隣)의 눈물이다.


“난리 속에 지내다 머리가 세었네, 몇 번이나 버리려던 목숨이었나, 오늘은 진실로 어찌할 수 없어 바람 앞의 촛불만 하늘을 비추네(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末然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天)”…“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 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세상이 이미 가라앉아 버렸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천고를 회고하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어렵구나(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난세의 두 처신. ‘인간 세상 식자 노릇’이 어려운 올곧은 사대부와 ‘인간 세상 식자 노릇’을 기회로 삼는 악덕한 사대부로 나뉜다. 간신 이완용에게는 식자 노릇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황현은 독약을 마시고 나서 자제들을 불렀다. 독이 퍼져 가는 몸으로 “내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 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라고 말했다. 국록 한 톨 먹지 않은 황현이 나라가 망했다고 목숨을 버려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인조반정 이래 300년 가까이 집권당이었던 노론의 당수 이완용이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에게 비서 이인직을 보내 망국 조건을 흥정하는 나라, 자신이 모셨던 황제의 지위를 국왕이 아니라 대공(大公)으로 해 달라고 흥정하던 나라에서 국록 한 톨 먹지 않은 황현에게 죽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황현은 “내가 위로는 황천이 준 떳떳한 도리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 평일 읽었던 만권의 책도 저버리지 않고서 고요히 죽으면 진실로 통쾌하리니 너희는 크게 슬퍼하지 마라”고 덧붙였다. ‘나라에서 선비를 기른 지 오백 년’이기에 선비는 망국 앞에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려온 아우 황원(黃瑗)에게 황현은 웃으면서 “죽기가 이리 쉽지 않은가. 독약을 마실 때 입에서 세 번이나 떼었으니 내가 이토록 어리석은가?”라고 토로했다. 

아직도 미련하게 살아있음을 훈계하는 결언이다.

세 번이나 약사발을 뗄 정도로 생에 애착도 있었다. 국록 한 톨 먹지 않은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 망국에 선비가 책임 져야할 바른 처신이었다.

사기(史記) 채택열전(蔡澤列傳)은 “군자는 난리에 의로써 죽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是以君子以義死難 視死如歸)”고 적고 있다. 이런 죽음에서부터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망한 기운에 가려져 황제의 별이 옮겨짐에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하루해가 더디겠구나
이제부터는 어명조차 받을 길이 없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천 가닥으로 흐른다.
(妖氣掩?帝星移 九闕沈沈晝漏遲 詔勅從今無復有 琳琅一紙淚千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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