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의 자기 신격화의 비참한 말로(행 12:20-24)

최세창
  • 2270
  • 2020-03-06 07:17:53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적 야욕과 목적으로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를 죽이고, 또 베드로를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등 교회를 핍박하던 헤롯 아그립바 1세에 대해 기록한 누가는, 이제 그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20】“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로 시작된다.
“두로와 시돈”(Τυρίοις καὶ Σιδωνίοις)은 ‘베니게’(11:19의 주석을 보라.)의 주요 도시들로 지중해에 면한 항구들이고, 로마 식민지로는 수리아주에 속했다.
{전자는 주전 2750년경에, 후자는 주전 1400년 이전에 건설된 후에 번창한 이방의 상업 도시들이었는데, 사악함 때문에 예언자들의 빈번한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암 1:9-10, 사 23장, 렘 25:22, 47:4, 겔 26:3-7, 28:12-22).}(눅 10:13의 주석).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는(튀모마콘, θυμομαχών) 이유, 즉 “그들과 심히 불화하는”①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마도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두로와 시돈에서 2~3마일밖에 안 떨어진 베리투스(Berytus: 지금의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 아름다운 건물들을 지어 놓은(Josephus in 얼레) 후에 이 신도시에 보여 주는 호의로 그 두 고대 도시의 상업적 우위가 위협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 Earle). 실제로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삼촌인 헤롯 안티파스와 두로를 두고 다툰 일은 있었다. 아마 이 때의 불화는 무역상의 이유로 짐작된다(Meyer, Lumby in 이상근).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는, 두로와 시돈이 식량이 부족한 좁고 긴 산악 지역이라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수입해 먹었다는 것이다. 이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왕의 시대 이래 유대에서 식량을 수입해 왔다(왕상 5:9, 스 3:7). 요세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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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Abbott-Smith, op. cit., p. 210” in R. Ea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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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us)는 갈리굴라 황제가 많은 식량을 유대의 항구 욥바에서 시돈으로 실려 보내도록 명령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Ant. xiv. 10:6 in 이상근).
“당시 두로와 시돈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헤롯[헤롯 아그립바 1세] 자신은 로마의 호의를 받고 있었으므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고 해서 그는 식량 공급을 중지하는 경제 봉쇄를 취한 것이다”(이상근). 말하자면, 식량 무기화 정책을 감행한 것이다.
식량 부족으로 심히 곤군해진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Βλάστον: 흔한 로마식 이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하였다. 그 사절단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최측근인 블라스도를 통해서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평화 조약을 맺자고 청한 것이다. 십중팔구, 그들은 블라스도에게 뇌물을 주었을 것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반응에 대해, 누가는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라고 하였다.
요세푸스(Josephus, Ant. XIX, 8, 2)에 의하면, 그 결정됐거나 정해진 날이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정복한 후에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로마를 본떠서 웅대한 축하 경기를 한 둘째 날이었고, 단순히 그의 생일이나 그의 통치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②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이 둘째 날에 귀빈석에 앉았는데, 왕복에 장식된 은들③이 아침 햇빛을 받아 쳐다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번쩍번쩍했다고 한다(Josephus, Ant. XIX, 8, 2).④ 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이 포함된 “백성을 효유”하였다.
“효유한대”는 에데메고레이(ἐδημηγόρει)이며 ‘열변을 토하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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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 R. C. H. Lenski.
3) E. Haenchen: Jos. Ant. 19, 344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은으로 만들어진 옷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4) in R. C. H. Lenski,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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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등을 의미한다.
백성들의 반응에 대해, 누가는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이라고 하였다.
“백성들”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왕으로서의 외적 권위와 외양과 연설에 압도되고, 또한 권력자에 대한 아부와 아첨으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라고 크게 소리질렀다. 요세푸스(Josephus)는 이것을 충분히 확증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현장에 그의 아첨자들은 그가 신이라고…크게 소리질렀다. 그리고 또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왕을 사람으로 존경하여 왔지만, 이후부터는 모든 인생 위에 뛰어난 분으로 모시겠나이다.’라고 하였다.”⑤ 이 당대의 유대인 역사가는 왕이 “그들을 꾸짖지도, 이 불경한 아첨을 배격하지도 아니하였다.”라고 덧붙인다.⑥ 이 자기 우상화 내지 자기 신격화는 교만의 극치이며, 하나님의 지위를 탈취하는 신성 모독의 극치이다.
그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비참한 종말에 대해, 누가는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라고 하였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영광(7:2의 주석을 보라.)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는, 자기 신격화로 인한 신성 모독과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한 것 등 교회를 박해한 죄를 범한 것을 의미한다.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의 “주의 사자”는 5:19의 주석을 보라.
렌스키(R. C. H. Lenski)는 “그의 죽음의 모양은 하나님의 표징적이며 눈에 보이는 심판이라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많은 구더기 떼가 희생물인 인간 괴물에게 몰려와서 악취 나는 몸을 이미 송장이 된 것처럼 파먹음으로써 끔찍하게 죽는 것과 같은 죽음이 많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죽음에 대한 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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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nt. XIX. 8. 2, in 이상근.
6)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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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스의 글(Josephus, Ant. 17, 6, 5)을 읽어 보고, 유대인들을 지독하게 박해한 적 그리스도의 현저한 유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죽음에 대한 II Macc. 9:5, 9을 읽어 보라. 잔인성으로 악명 높은 키레네의 여왕인 페레티마(Pheretima)는 산 채로 벌레 떼에게 먹혀서 죽었다.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한 갑바도기아의 로마 총독인 헤르미니아누스(Herminianus)는 또 하나의 예이다. 또한, 교회를 박해한 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갈레리우스(Galerius)도 그러한 죽음을 당했다. 역사가 니버(Niebuhr)는 스페인의 필립 2세(Philip II)도 잔인성과 박해로 악명 높았는데, 그런 죽음을 당했다.”라고 하였다.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에 대해, “이 때 이 불경한 아첨에 대해 저들을 책망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그물에 올빼미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그것이 흉보의 사자임을 깨닫고 가장 큰 슬픔에 빠졌다. 그때 심한 복통이 일어났다. 그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너희들이 신이라 부른 나는 곧 이 생명에서 떠나라는 명을 받았고,…불멸이라고 한 나는 즉시 죽음으로 달리게 되었다.’…그 후 닷새를 복통으로 완전히 지친 끝에 죽고 말았다(Ant. XIX. 8:2).”⑦라고 하였다.
외경에도 주의 사자가 그를 쳤고,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었는데, 몸에서 나는 악취가 그의 모든 군사들의 코를 찔렀다(II Macc. 9:5-9).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구더기 떼나 벌레 떼에 먹혀 복통을 겪다가 죽은 것이 아닌가 싶다.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멸망과 대조적인 교회의 부흥에 대해서, 누가는 【24】“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라고 하였다.
본서의 6:7과 19:20과 여기 모두 세 번 나타나는 표현이다(6:7의 주석을 보라).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36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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