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의병

도현종
  • 1217
  • 2020-03-14 00:54:25
사무엘하 16장 5-14절에 기록된 시므이의 저주, 그 못난 행위 뒤에는 분명 사단의 간교한 전략이 숨기어져있다. 물론 다위의 곁에는 "일당천", "일당만"을 감당해내는 아비새같은 장군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용서한다. 충군의 모습이다.

주님은 세상적인 잣대로혹은 성공과 실패로 충신을 논하지 않는다. 주님의 기준에의하여 논할뿐이다.

전주시 한옥마을 고종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자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있다.

'황실 후손'에게 지자체가 연 9000만 원의 예산과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 '승광재'와 '삼도헌'에 무상으로 머물며 관리토록 하고 있다.

청나라에게 동학군을 진압할 군대를 파병해달라고 요청한 그의 후손에게 엄청난 자금을 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으로 인해 이후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망국의 길이다. 망국 군주의 자손이다.

반면 이름도 없는 의병들 거의가 외면당하고 찬바람을 맞아가며 오랜 세월 찬바람 속에 사라져가고있다.

부국강병, 국체 보존이라는 시대적 대과업조차 실패하고 어느 것 하나 달성하지 못한 군주의 후손이 부끄러운 역사 강의를 하고 자금을 지원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물론 한옥마을의 주민들조차 대답은 차갑다.

의병의 고향 제천 홍사구 의병의 19세 소년 의병의 기개를 펼쳐본다.

홍사구 의병은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자 의병에 참여하여 충주 제천등지에서 싸운 의병이다. 

을미의병 시기에 안승우에 가담하여 시종곁을 떠나지 않았다.

남산 전투에서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자 장졸들이 모두 흩어졌으나 홀로 중군장인 안승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승이 몸을 피할 것을 여러 차례 명령하였으나, 피하지 않고 함께 순국하였다.당시 나이 19세였다. 동료들을 향하여 남긴 어록이다.

"우리 의병들은 말할 수 없이 용감하지만 무기가 별로 없소. 총포는 너무 낡아서 불발이 많고 총알은 거의 다 떨어졌소. 알고 있소. 이렇게 싸우다 결국 죽겠지... 허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소."

홍사구 의병은 두 팔을 잘리고 순국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적을 호령하다 안타깝게도 왜적에 의하여 전사하였다. 

을미의병 육의사 주용규(朱庸奎).서상렬(徐相烈).이춘영(李春永)·안승우(安承禹).홍사구(洪思九).이범직(李範稷)으로 모두 제천 지방의 을미의병을 창도한 의병들이다.

제천은 의병들의 고장이다. 이후에 제천은 그림자조차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불태워졌다.

망하는 길과 충신의 길두가지 길이다.

망하는 길

간신이다. "아첨에 능한 사람은 아첨으로 환심을 사고 순종하는 것에 그칠 뿐인데도 그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위태로움에 이르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아첨하는 사람은 義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오직 利만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익이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있으면 임금이나 아버지를 따르고 이익이 權臣에게 있으면 권신에게 빌붙고 이익이 적국에 있으면 적국과 내통하고 이익이 적국에게 있으면 적국을 가까이하여 이익이 있는 곳이면 따르고 이익이 떠난 곳이면 멀리하는 사람들이다.

살아냄의 길

충신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 "마땅함을 따라가며 임금을 따르지 않으며 도리를 따르지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다. 임금으로 하여금 不義에 빠지지 않게 하며 아버지로 하여금 不道에 들지 않게 한다. 임금이나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장차 임금이나 아버지를 편안한 곳에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님의 길에 충분하게 사랑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제천 목사님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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