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정치가 문제

김정효
  • 2044
  • 2020-03-12 07:58:02
정쟁(政爭)에 몰두하는 정치가, 이기적인 국민, 특종에 눈이 먼 언론과 인기에 영합한 가짜 전문가, 어찌할 바 모르는 보건당국이 빚어낸 현실판 부조리극(不條理劇).

이탈리아가 멈췄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간판은 우한 코로나 앞에서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10일부로 전국 모든 지역에 대해 이동제한령이 발효하고 모든 문화·공공시설을 폐쇄했다. 사실상 ‘국가 봉쇄’다.

해외 언론들은 전례없는 강도 높고 과감한 조치에 박수를 쳐주기 보다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할 동안 대체 무엇을 했냐’며 이탈리아를 두고 ‘유럽의 우한’이라고 스스럼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어쩌다 이런 오명을 안게 됐을까.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탈리아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주의와 아마추어리즘, 심각한 이기주의가 확산의 배후라고 꼽았다.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관광지 콜로세움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관광지 콜로세움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정계는 우한 코로나가 덮치기 전부터 이미 혼돈에 빠져 있었다. 작년 9월 극우정당 ‘북부동맹’과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뭉쳐 만든 연립정부는 극심한 갈등 끝에 붕괴했다. 이후 극우정당 자리를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이 대신 차지해 만든 새 연정이 국정을 이끌었지만 재산세와 난민세, 형사법 개정안까지 사사건건 무탈히 넘어가는 사안이 없었다.

이 와중에 우한 코로나가 닥쳤다. 출범한지 막 4개월에 불과한 아마추어 내각은 기민한 대처방법을 내놓지 않은채 연일 정쟁을 이어갔다. 초기 대응 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1월 말 자국에서 중국인 관광객 첫 확진자가 나오자 오는 4월까지 중국 등을 오가는 직항 노선 운항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를 경유해 육로나 항로로 입국하는 중국인은 막지 않았다.

유명무실한 입국 제한 조치를 내리고 정치권이 투닥거리는 동안, 북부 롬바르디아주(州)와 에밀리아 로마냐주를 중심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겉잡을 수 없이 늘었다. 이탈리아에는 중국인 32만명 정도가 사는데, 대부분 섬유 산업에 종사하며 산업 중심지인 북부 지역에 몰려 산다.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밀라노와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에 사는 중국인만 8만명에 달한다.

심지어 새 연정 구성에 산파(産婆) 역할을 한 니콜라 진가레티 민주당 대표는 제 한 몸 보전하지 못하고 7일 우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유럽 주요국 정치지도자 가운데 첫 감염 사례다. 진가레티 대표가 평소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는 터라 이탈리아 내각 내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콘테 총리는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를 진정시키지는 못할 망정 무책임한 처신으로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콘테 내각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10일 광범위한 봉쇄령을 내리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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