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3.8일 주일 낮 설교 요약)

오세영
  • 2013
  • 2020-03-11 08:54:13
마6;10

3.1 만세 운동이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 중 기독교가 16명이고 투옥된 19,525중 3,721명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1운동은 1918. 1월에 있었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비롯 많은 식민국가가 독립 할 수 있는 시대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기독교가 3.1운동의 주체는 아니었지만 전국적으로 불을 지피고 번져가게 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당시 20만에 불과한 기독교인이었지만 많은 예배당이 불타고 신자들의 투옥이 3,721명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3.1운동에 적극 참여 했던 기독교는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이 땅의 역사 가운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 있었던 기독교의 정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기독교사회민주당 결성: 1945년 9월초 신의주 한경직목사 주도
2. 기독교자유당 결성 작업: 1945년 11월초부터 평양,
3. 조선민주당: 해방 후 이북 기독교인들이 참여, 조만식 장로 대표
4. 기독교동연맹: 1946년 11월 28일 창립
5. 남한의 사회민주당: 1945년 9월 16
6.그리스도교연맹: 1947년 7월
7. 기독교민주동맹: 1947. 2
8. 기독사랑실천당(기독당): 2004년
이러한 정치참여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찾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당시절과 군사독재, 또한 유신헌법 제정 등 반민주, 반인권적 탄압시대에 NCCK 외에는 기독교 정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였던 것을 봅니다.
오히려 국가 조찬기도회 등을 통하여 불의한 정권의 시녀 노릇만 하였던 것입니다.
한반도에 복음이 심어진 후 140여년에 이르는 개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시대 에도 친일의 편에 서는 것이 대세였고 군사독재 정권에도 저항하는 세력이 미미 했습니다.
오직 공산주의와의 싸움이 치열하였던 것입니다.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이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권찬탈과 독재와 부정 앞에서는 소수의 사람 외엔 싸울 수 없었고 모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기독당은 2004년 창당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인구를 25%에 이르는 것으로 생각하며 신정국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치참여의 정점을 달리고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높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 땅의 기독교는 아직 기독교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고 간섭해야 하는지 잘 정리 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서구 유럽의 기독교가 오랜 세월 세속화된 과정을 거치며 기독교의 위치를 찾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세속화 과정이 미천한 우리는 정치 참여에 미숙함이 많은 것을 봅니다.

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의 정신은 현대 기독교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3.1 운동 당시 기독교는 지금처럼 기독당을 만들어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신석구 목사님을 통하여 그 상황을 볼 수 있는 일면이 있습니다.
신석구 목사님은 영적인 분이며 복음주의자 입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종교와 정치는 엄격히 분리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33인의 서명자 중에 한 분이 되었습니다.
처음 서명을 제안 받게 되었을 때 몇 번 망설였지만 기도 중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마음으로 듣고 서명하게 되었다고 회고 하고 있습니다.
“네 나라와 땅이 빼앗겼는데 다시 찾는데 네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즉 성서를 통하여 체득한 신앙적 결단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두 왕국설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나라를 분리하는 이원론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교는 별개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루터는 두 정부 론을 말하며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두 정부에 통치하는 양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과 같은 이원론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정부도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통치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루터의 가르침이 좀 더 성서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세상나라도 주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특히 감리교회는 교리적 선언 제 7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 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으며”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고백대로 이 땅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신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듯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내 삶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정신과 힘을 가지고 세상 나라의 어두움을 밝히고 부패함을 막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제와 맞서고 공산주의와 싸워야 하고 독재와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한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일제시대도 아니고 군사독재 시절도 아닙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정부를 계몽하고 채찍질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으로 볼 때 세상나라는 항상 부족합니다.
지금의 정부는 지난 과거의 역사에 붙잡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고 많은 이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바로 알게 되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모두 용서 받기 어려운 국가들 입니다. 현 정부는 친중, 친북 성향이 여러 면에서 두드러지고 있음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반일의 감정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면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난 모든 과거를 과감히 털어내고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이 시대에 가르쳐야 합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듯이 미움은 계속 미움을 낳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국론이 분열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의 책임입니다.
북한도 햇볕 정책과 같은 기조로 대화를 계속해야 하며 일본을 비롯한 모든 나라들이 한 형제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이며 우리가 이루어야 할 나라인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정신으로 세상 나라를 잘 이끌어야 할 우리가 세상의 논리에 빠져 같이 진흙탕 싸움을 한다면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는 요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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