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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틀러가 사회주의적 나치즘의 제3제국을 세우려할 때
현종서
- 1877
- 2020-04-02 21:23:04
그때 궤벨스의 활약이 컸고
복음주의 교회 진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국가체제라고 반기를 들고 선언한 것이 "바르멘 선언"이었고 이 선언문을 초안한 신학자가 칼 바르트였습니다.
칼바르트 역시 기독교적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지고 한때 불룸하르트를 존경하며 그 진영에 가담하였었습니다. "1921년까지 작은 공단 지역인 자펜빌에서 목회를 한 칼 바르트는 그때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현실 참여적인 목회자로 변모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1913년에는 스위스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사회주의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었습니다."그때 그의 이상은 "기독교적 사회주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후 세계 1차대전을 겪고, 1933년 힛틀러가 등장하여 독일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할 때에 소위 독일신학계를 주름잡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힛틀러의 정책에 이론적으로 찬동 지원하는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 자기가 공부한 자유주의 신학이 자펜빌에서 목회할 때 별 효용성이 없는 부적절한 신학으로 느껴 로마서를 직접 연구하며 하나님말씀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었는데, 힛틀러의 국가사회주의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서 한참 어긋나는 것을 발견하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하에 교회까지도 지배하려는 정치 활동에 대해서 "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는 그의 몸으로서 역활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인본주의적인 철학의 해석을 거친 신학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성을 중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귀울이고 순종하고자 하는 "말씀의 신학"을 제창하였습니다. 이것은 위기의 신학 변증법의 신학을 넘어 교회 위한 신학, 교회 교의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주사파 정치세력이 이와 비슷한 정치형태를 보이고 있을때 당시 바르멘 선언에 동참하였던 복음주의 교회 계통 본회퍼가 당시 힛틀러를 지목하여 미친 운전사에게 운전을 맡겨서는 안되고 그를 운전대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감옥에 갇히듯 한국의 어느목사도 그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행동의 신학자로 힛틀러 암살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나치정권에게 붙들려 들어가 옥살이하다가 결국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어떻게 교회 목사가 암살단에 가입할 수 있느냐고 많은 신자들이 그를 비판하여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른후 독일의 교인들과 신학자들은 그의 신학 사상과 행적에 대한 여러 고증들을 거쳐 그를 "순교자"급으로 평가를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요즘 정치와 교회의 관계속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창조자요, 섭리자요, 심판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인본주의 철학으로 정치사회 현실을 자기 생각대로 재단하여 평가하지 말고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시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산자와 죽은자의 세계까지 통치하시는 분의 음성을 성경 말씀을 통해 듣고, 그분의 영,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귀울여 듣고 바른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직책을 가진 목사들은 더 철두 철미 회개하고 청결한 심령을 가짐으로써 하나님께서 교회와 국민에게 주시는 말씀을 정확히 받아 왜곡됨이 없이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