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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히브리 산파의 지혜와 통치자
최세창
- 1607
- 2020-04-18 01:20:24
1. 시작하는 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경제 대국으로 만든 요셉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 곧 통치자는,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염려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는 등의 고역을 치르게 했습니다. 고급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막고,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들을 심히 엄하게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번식하고 창성했습니다.
애굽의 통치자는 깨닫고 회개할 만도 한데, 오히려 더 악랄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잔악한 정복자다운 처사였습니다. 사람이란 생긴 대로 하게 마련이므로 기도와 말씀과 순종으로 자기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2. 애굽 왕의 잔악한 정책과 두 히브리 산파의 지혜
애굽의 왕은 부국강병인 애굽에서, 분야별로 최고의 스승들에게서, 진즉에 최고 통치자가 되는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벌여 무수한 살상과 가정 파괴와 약탈과 방화 같은 잔악한 범죄나 저지르고,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는 교활한 잔악 정책이나 폈습니다. 각종 지식은 인격 성장과 영적 성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통치자에게 빌붙어서 불법과 범법과 편법과 악법 제정과 궤계와 거짓을 동원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위세와 교만을 부리는 관료들과는 거리가 먼, 믿음의 사람인 히브리 산파들의 지혜에 비추어 볼 때, 미련하기 짝이 없는 통치자이었습니다.
통치자라면 이스라엘을 학대할수록 더 번성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면, 좀 뭔가 생각도 해 보고 정책을 바꿀 만도 한데, 오히려 더욱더 극악을 떨었습니다. 도저히 잘될 수 없는 악조건에서 잘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 같은데, 미련한 고집과 오기만 부렸습니다.
온갖 머리를 짜내던 애굽 왕은 드디어 잔인무도한 정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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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 여인을 위해 조산할 때에 남아가 출생하면 죽이고, 여아가 출생하면 살게 두라.”라고 엄명했습니다. 이 잔인무도한 정책은 당시의 세계적인 국가의 통치자와 정계와 학계와 종교계의 지도자들의 세상적인 지혜의 소산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0을 보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나 지식, 웅변과 아첨과 뇌물 공여 등의 수완을 뽐내며 살아가는데, 실상 그들의 생활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지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나 지식, 경험이나 죄악의 수완 등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혜와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애굽 왕과 현관 대작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학대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번식하고 창성하는 이스라엘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하는데, 쓸데없는 걱정만 했습니다. 지혜란 각자 다른 관점과 입장에 따른 분별력이 아닙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요 우주 만물의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서 보다 더 값진 것, 보다 더 두려워 할 것, 보다 더 중요한 일, 보다 먼저 할 일 등을 분별하여 행하는 능력입니다. 시편 111:10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통치자의 엄명을 거역하여 이스라엘의 남아를 살려 두자니 목숨은 물론, 가족과 친척들까지 사지에 몰아넣게 될 것이 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평소에 유용했던 산파로서의 지식과 재능과 실력이 이제는 목숨은 물론, 가족과 친척을 사지에 몰아넣는 덫이 된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혜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왜정 때에도, 지식인들과 부자들과 특별한 재능과 실력이 있던 사람들이 평소에 유용했던 그 소유들 때문에, 남들이 겪지 않는 큰 고통을 겪거나, 변절하여 친일 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성인과 부자들 중에는 사유 재산을 국유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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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 아래 사유화한 공산국가의 독재자들에게 살상을 당한 이들도 많고, 대량 살상과 숙청에 힘을 보탠 이들도 있고, 이용당한 이들도 있습니다. 세계사를 보아도 그런 불행한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 의의와 목적을 성취와 소유에 두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현대인들은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무엇을 성취하느냐,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자가 아닌 권세로 나라를 망치거나, 나라와 국민이 아닌 권력자들에게 충견 노릇을 한다면 부모에게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모든 성취와 소유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쓰일 때에 값진 것입니다. 가족과 친척을 위한 사랑이든, 이웃과 정치인들을 위한 사랑이든, 국가를 위한 사랑이든 간에 상관없습니다.
히브리의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존재하게 하시고, 해산을 돕는 재능과 실력을 소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두 산파는 자기들을 죽일 수도 있는 애굽의 통치자도 두려워했지만, 목숨과 영혼까지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훨씬 더 두려워했습니다. 마태복음 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했습니다. 두 산파는 목숨과 영원한 운명, 가족과 친척과 그 모든 소유를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히브리 여인들이, 남아를 낳든 여아를 낳든 간에 상관없이 살게 두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목숨까지는 걸지 않더라도,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는 나쁜 명령이나 잘못된 정책에 관직을 걸고 거역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하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의 거역을 안 애굽의 통치자가 대노하여 그들을 소환해서 문책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두 산파는 지혜로운 답변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답변의 요지는 이겁니다. 가서 죽이고 말고 하기도 전에, 건강한 산모가 아들을 낳았다고 온 가족과 이웃이 기뻐하며 보고 있는데 어떻게 죽이냐는 겁니다. 히브리 여인들을 애굽 여인들처럼 약골로 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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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 히브리 산파는 권력자들에게는 매우 괘씸한 여인들이었고, 하나님께는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들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두 산파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백성들에게는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 두 산파의 집을 왕성케 하셨습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지혜를 따른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를 더 크게 듣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보다 권력자들을 더 무서워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의 안위와 이해관계를 더욱 중요시합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결과는, 책망이나 징계입니다. 그리고 깨닫고 회개치 않으면 갑작스런 재앙과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통치자는 깨닫기는커녕, 자신의 악행을 더욱더 심화시켜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 출생하는 이스라엘 남아들을 다 하수에 던져 버리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신인 줄 착각하는, 악랄한 통치자인 그는 악 위에 악으로, 하나님의 진노 위에 진노를 쌓아 나갔습니다. 도중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때로 한순간의 지혜로운 믿음의 결단이, 세상에서의 복과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해 줍니다. “여러분, 나 같은 살인마도 예수님이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까지 사랑한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렵니까?” 이 애끓는 호소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도소의 재소자 삼분의 이를 전도한 사람이 누군지 압니까? 바로 사람을 여섯 명이나 도끼로 죽인 살인마인 고재봉입니다.
3. 맺음말
하나님과 권력자 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결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몸은 물론,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합니다. 목숨이 걸린 위기의 때만 아니라, 평소에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을 성취한 것과 소유로 자신이나 어떤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잠언 3:6 이하를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목숨이 걸린 위기의 때나, 잔악한 범죄를 행했을 때까지도 포함하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지도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라는 겁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출애굽기 1:15-22)
15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16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18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19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21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22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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