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최초/왕의 반란
도현종
- 1075
- 2020-04-20 02:20:31
성서에 분명한 해답이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깊게 살피지않는다. 주님을 사랑하지않는다.
사무엘시대는 어느 사사시대보다 안정적인 시대였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 블레셋을 막았고 아모리와의 사이에도 평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여호와의 왕 됨을 거부하는 언약의 배반이다. 없어질권력을 사랑한 이유이다. 주님 사랑에대한 돌아섬이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거부이다.(삼상8:6-9)
벼랑에서 손을 놓아라.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한테 전한 말이다.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진정한 장부다’라는 의미이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미련을 버리고 권력의 집착을 비워내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 비우지 않으면 주님을 담을 수 없다. 버리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윤봉길은 폭탄 거사를 앞두고 있었다. 벼랑에서 손을 놓은 뒤 과감해질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비워야 담고 버려야 가진다.
17살의 어린아이 방석과 방번의 죽음은 가슴 속의 회한으로 남게 해주었다. 태조는 자기 동생들을 죽인 태종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고, 한편으로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이것이 바로 조사의의 난이다.
최초의 왕의 반란이다.조사의는 강씨의 친족이다. 세자인 방석의 세자빈이 내시인 이만과 간통했을 때, 강력히 조사할 것을 요구하자, 왕실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하여, 귀양까지 간 인물이다. 왕자의 난의 승리자인 태종이 왕위에 올라가자,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낀 조사의가 태조의 명을받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동북면을 관장하고 있던 박만이 태상왕인 태조의 명을 어기지 못하고, 협조할 상황에 이르자, 그 심각성을 인식한 태종은 군사를 준비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사신을 보내어 태조를 회유하여, 한양으로 모시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함흥차사였다. 태조와 태종의 사이가 전쟁까지 치루어야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것이 사실이고, 조선왕조실록에서조차 기록이 삭제된다.
박순이 태조를 설득하러 간 것이 아니라, 동북면 지방 수령에게 조사의를 따르지 말 것을 선동하다가, 조사의에게 피살당한 것이다.
설득을 위한 대리사의 역활을 지니고 조사의를 찿아갔던 무학 또한 실패로 돌아선다.
폭력이 수반된 권력이라는 것은 부자도 서로 갈라지게 하는 존재이고, 결국 최후의 승자인 태종이 조사의의 난마저 진압함에 따라, 자신의 한계가 결국 한양으로 돌아와 1408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조사의의 난으로 인한 휴유증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긴다. 태종에 의해 사면되었던 박만 등의 처벌을 요구하는 대간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왕이었던 태종이 한 마디 말로, 이것을 무마시켰다. "박만은 조사의의 난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태상왕(이성계)의 명을 따른 것이다." 조사의의 난은 태조의 난이다. 부자지간의 피흘리는 처참한 난이다.
못난 권력은 부자간의 사이도 끊어버릴 정도로
매정하다. 비참하다.
하나님이 왕의 제도를 반대하신 이유이다.
측천무후는 장손무기, 저수량, 우지녕 등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다. 공신 가운데 살아남은 건 이세적 정도이다.그러나 이세적 또한 사후에 손자인 이경업이 측천무후에 대항하여 모반을 꾸미던 것이 진압되는 바람에, 그 시신이 무덤에서 끌려나와 산산이 분쇄되어 바람에 날려지는 형벌을 받았다.
측천무후는 황태자였던 이충을 강제 폐위시키고 자신의 장남 이홍을 황태자로 앉혔으나, 그 역시 곧 죽게된다. 십팔사략에서는 소 숙비의 두 딸이 유폐되어 시집을 못 간 것을 이홍이 주선하여 보내겠다고 하자, 그것이 측천무후의 심기를 건드려 독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권력 유지를 가능하게 하기위하여 아들을 살해하는 일은 손에 꼽을정도이다. 또한 권력은 방종한 음란을 가져온다. 전국 미소년들, 휘하의 미남 장수들, 풍소보 , 심남료, 장역지, 장창종 , 이들 모두가 측천무후의 성적대상 놀이갯감이었다. 화장실조차 남근을 보기위하여 칸막이를 치워버린다.
살아냄은 하나님뿐이다. 권력이 아니다. 주님 사랑이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