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저주

엄재규
  • 1284
  • 2020-04-28 22:17:23
복과 저주

신앙에서 복 blessing 과 저주 cursing 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떼 놓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 가운데 이런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육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복'만을 좋아한다. 교회의 강단에서도 ※ 번영신학, 즉 기독교 신앙의 길을 성공 출세 번영 부자가 되는 수단으로 여기는 식으로 '복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귀를 즐겁게 하는 말'에 속한다. 딤후4:3~4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이른 바 복을 파는 것은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 종교들이 하는데 심지어 금칠했으나 말도 못하는 크게 만들어도 걷지도 못하는 우상을 조각해 놓고 빌면서 이런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 누가 복을 얘기하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공의와 심판과 지옥과 저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면 대부분 가짜입니다. 이는 물질주의를 강조하고 육신의 성공에 초점을 둔 이단 사상입니다. 이는 처세술, 친목계를 유지하는 교제술, 사기꾼의 수법, 혹은 삼국지를 읽고 터득한 잔꾀에 해당합니다. 사탄은 지혜는 있으나 타조처럼 명철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올바른 교리는 복만 얘기할게 아니라 계명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딤후4:2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를 따라야 합니다.

※ 번영신학 (Prosperity theology)이란 재정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신앙이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믿는 반성경적 신학이다. 번영신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런 성경해석은 초기 유대주의의 주된 흐름에서 나타나는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없다. 하나님과 화해된 속죄를 죄와 가난을 완화시킨다고 해석하며 <저주란 믿음이 깨진 것을 말한다>고 한다. 평택대 안명준 교수는 “한국교회가 지금과 같이 성장주의 물량주의에 빠져 ........ 하나님의 나라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한국교회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권위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올바른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철저한 감시를 해야 하며......”고 언급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은 “만일 if 너희가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복을 받고, 만일 if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일관되게 반복하고 있으며, 가나안을 정복 후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축복의 상징인 그리심 산과 저주의 상징인 에발 산에 각각 올라서서 신27:11~26 모세의 명령을 따라 이러한 교리를 다시 몸으로 각인해야 했습니다. 신명기에서 '복'을 말했으나 신28:1~14, 또한 '저주'의 말들 curse words 이 이 보다 3배 많게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신28:15~68

예수께서 마11:20-24절에서 고라신과 가버나움을 놓고 “화 있을진저!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15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구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장차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 여러 가지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껍데기를 만들어 알맹이 없는 예배를 하고, 구원의 문턱을 제 맘대로 낮추어 자신뿐 아니라 교인들까지 지옥에 보내고, 하나님에 말씀에다 자기 철학을 섞어 부패한 말을 내 뱉는 양을 잡아먹는 거짓 목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보면 이는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6:22에서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라,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Anathema maranatha, прокля́тие марнафа,”라고 신앙수준이 낮은 고린도 교회에게 맺는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믿음의 용사인 다윗왕은 여러 시편에서 악인에 대한 저주를 고스란히 남겼는데 예를 들어 109편 등이 해당합니다. 여기에 담긴 엄청난 수준의 저주의 말들 curse words 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에서 복과 저주는 서로 떨어진 별개가 아니며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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