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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오재영
- 1617
- 2020-05-01 20:30:39
천자문을 1천500년 전의 책이라 하여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 안에는 우주, 자연, 인간, 역사, 사회, 정치 등에 관한 오묘한 지혜를 담은 기초의 책이라 한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뒤늦게 귀한 독자아들을 얻었다. 글을 가르칠 나이가 되어 좋은 스승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마땅한 선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들른 어느 선비에게 아무 곳에 훌륭한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곳은 백여 리가 떨어진 먼 곳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아이를 데리고 이튿날 그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에게 아이를 보이며 인사를 드리자, 선생은 자기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잘 가르칠 능력이 없다면서 사양하였다. 그러나 부자는 선비로부터 들은 말이 있기에, 속으로 괜히 사양한다 싶어 몇 차례나 간곡히 청하여, 마침내 문하에 둘 것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맡겨 둔 이상, 믿고 글공부를 마치면 보낼 것이니 그때까지 찾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자는 귀한아들을 오랫동안 볼수 없다는 조건에 마음이쓰였으나 외아들을 크게만들 욕심으로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온 부자는 아들을 좋은 선생 밑에 보냈으니, 여느 접장(接長)밑에서 배우는 아이들보다 몇 곱절이나 높은 공부를 빨리 해낼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기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가서 아들의 공부한 이력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찾아오지 말라고 한 선생과의 굳은 다짐 때문에 가 볼 수가 없었다. 이러기를 거의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근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천자문을 이미 끝을 내고 책(冊)거리 잔치를 한다고 야단들이었다.
이것을 본 부자는, 우리 아들은 훌륭한 선생 밑에 보냈으니 저들보다 훨씬 높은 동몽선습, 명심보감 정도는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먼발치에서나마 아들을 보러 갔다. 그날 밤 부자는 글방의 봉창에 침 바른 손가락으로 구멍을 냈다. 방안의 아들은 선생 앞에서 글을 읽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다름 아닌 천자문이었다. 서탁(書卓)에 펼쳐진 책도 천자문이 분명하고, 아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본 부자는 깜짝 놀랐다. 아들이 아직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다니, 그러나 워낙 훌륭한 선생이라 들었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돌아왔다.
그럭저럭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인근 아이들은 이제 명심보감을 거의 다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보통 선생 아래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저 정도가 되었는데, 우리 아이야 지금쯤은 소학 정도는 읽었을 것이라 자위하면서 또 아들을 보러 집을 떠났다. 이번에도 부자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아직도 천자문을 펼쳐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이왕 맡겼으니 조금만 더 두고 보자며 선생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한 해가 다 되었다. 이웃집 아이들은 이제 논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쯤은 논어는 아니라도 명심보감은 마쳤으리라 생각하고 또 아들을 보러 떠났다. 학당에 도착한 아버지는 또 한 번 소스라쳐 까무러칠 뻔하였다. 아직도 천자문을 펼쳐놓고 하늘천 자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본 그는 더는 참지를 못하고 집으로 뛰어들어 선생에게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분풀이를 하고 아들을 끌어냈다. 부자가 미쳐 날뛰며 온갖 험한 소리를 퍼부어도 선생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 부자는 천자문을 펼치고 읽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두 눈을 딱 감고 숨도 안 쉬고 한달음에 외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그런데 왜 천자문만 펴놓고 있었을까? 부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동몽선습’을 폈다. 그런데도 아들은 막히는데 하나 없이 줄줄이 읽는다. 부자는 놀랐고 한편으로 이상한생각이 들어 논어를 펼쳐놓았다. 아들은 그것도 막힘없이 술술 읽고 말았다. 부자는 그만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또 다른 책을 내놓았지만 아들에게 막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서 아들은 결국에는 사서삼경까지 모두 읽어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하기를, 하늘의 이치를 다 배우고 며칠만 있으면 조금 남은 땅의 이치를 다 배워 공부를 마치려는데, 아버지께서 막무가내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뉘우친 부자는 다음날 일찍이 쌀 수십 가마니를 달구지에 싣고 아들을 앞세워 그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 앞에 큰절로 백배 사죄하며 아들을 다시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한말은 “저 아이는 이미 바람이 들어 버렸으니 더는 가르칠 수 없게되었다"고 하면서 그만 돌아가라고 하였다....
대가(大家)만나기를 힘써야할 때...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이제는 모두가 주님나라에 가셨지만,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만 이해가될 소중한분들의 만남이 있다. 이분들을 가까이에서 뵈면서 말과 글로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사역자 된 이들에게 자신을 이끌어주고 또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이고 축복이다.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가야 할 정도(定道)에서 벗어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저이에게도 신앙과 말씀의 대가(大家)를 만났다면 현재보다는 훨씬 더 존귀함을 받을 터인데 고작 남들의 호기심이나 채워주는 위치에서 시간에 머물고 있는 모습들이다.
인생의 여정이 더해지면서 생각과 몸으로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세상소문들이 지니고 있는 것의 두려움과 또 그 소문들이 지니고 있는 허황됨을 알게 되는 허전함이다. 그가 어떠한 길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든지 자칫 그 허명에 정신을 팔다가는 그는 잠시 세상 사람들의 흥미를 충족시킬 뿐 결코 얻을 것은 없다. 오늘도 기도드린다. 오늘의 동일한시대의 선, 후, 배 동역자 들이 혼돈된 세상의 그 잔인한 구경꾼들의 호기심이나 채워주는데 매몰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존중히 여김 받는 그날의 목표와 그 보람으로 한눈팔지 않고 나갈 수 있기를...
시대흐름과 관계없이 자기 성찰에 매진할 때...
우리의 이 길은 개인의 입신양명이나 영달의 길이 아니다. 소명에 따라 죄와 사망의 굴레에 매여 있는 영혼을 영적싸움으로 구하고 보살피는 것이 우리의 소임(所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째소임이고, 둘째도, 셋째도, 우리의 소임은 이것뿐이다. 만약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이라면 그는 이 소임에 따르는 자신의 영적 신선도(新鮮度)를 유지하기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자기스스로 설정해놓은 나름의 선(線)이 있어야한다. 그것은 언제 누구 앞에서든지 먼저 수시로 주님 앞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점검하는 예리함과 함께, 이것이 그의 생명선(生命線)임을 심비(心碑)에 새길 일이다.
각 연회마다 은혜가운데 주님인정하시는 소중한 이들이 적재적소에 임명되기를 기도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