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수록 좋은 꼭 필요한 사람.

오재영
  • 1475
  • 2020-05-09 01:21:32
앤 맨스필드 설리번(1866.4.14.~1936.10.9.)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다.
그의 엄마는 5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로 수시로 가정폭력을 일삼든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엄마 잃은 후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에 실명까지 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주변의 모두가 치료를 포기했을 때 퇴직한 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그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을 했다. 그날부터 로라는 앤에게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접시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해 주었다. 그렇게 한 결 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조차도 먹지를 않았다.

그러든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 작은 변화에 용기를 얻은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해 주었다. 그 후로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가 점점 많아졌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밝은 웃음도 찾았다.

그 후, 로라가 세상을 떠나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그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까지도 성공했다.

수술 후 정상인으로의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앤은 우연히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게 되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을 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못 가르친다고 포기했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그 사랑이 3중고의 장애로 어둠의 늪에 빠져있던 그 아이가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

1887년 어느 날, 마차가 집 앞에 도착했을 무렵, 소녀는 현관 앞에 나와서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앞치마는 흙투성이였다. 마차에서 내린 어떤 사람이 현관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그때의 만남을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일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쳤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나를 끌어당겨 양팔로 꼭 감싸 안았다. 그녀는 온갖 사물을 내 앞에 드러내 보이려고 한 사람, 사물의 비밀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내게 사랑을 주려고 예까지 찾아온 사람이었다.” (헬렌 켈러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중에서)

어릴 때부터 남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주변에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장애인(障碍人), 평범한 이들보다는 내면에 남다른 아픔이 있기에 그러한지 교제에도 많은 배려를 요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아픔을 갖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이미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바로 밑의 여동생이 진지하게 한말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오빠! 살아보니까 문득 저 사람이 장애 때문인지 아니면 저 성격 때문에 장애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점점세상이 더욱 삭막해져가는 모습들이다.
온갖 선동과 가짜뉴스들... 이러한 혼란 중에라도 때때로 분주하기만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남들은 나를 어찌 생각할지를 돌아보기 위하여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들이 필요하지 않는가? 입으로는 모두가 살같이 빠르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듯이 집착하는 모습들 속에 평안이 있을까? 그러나 세상일은 그 나름의 기준이 있어 불편해도 그 룰(rule)을 지키는 것이 본인과 관계된 이들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다.

성경말씀에도 “미숙하면 싸우고 성숙하면 하나가 된다, 미숙하면 분열하고 지배하려고 하지만, 성숙하면 섬기려고 한다. 남을 높일 때 평안해지고, 남을 낮출 때 불안해지는 것이 정상 아닌가? 자신의 눈에 비친 남의 허물과 약점을 사랑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지배할 기회로 생각할 때 이미 그 마음은 병들기 시작을 하고, 사랑의 기회로 배려할 때 그 마음은 치유의 과정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다양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정신적 장애까지 극복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사랑은 생명을 창조하기에...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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