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 설교: 신들린 딸을 사랑한 어머니

최세창
  • 2079
  • 2020-05-06 04:49:25
(설교 동영상: 유튜브)

<마태복음 15:21-28>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1. 시작하는 말

10여 년 전에, 비정한 장면이 인천 공항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네다섯 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아이를 그냥 놓아두고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런 후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던 그 엄마는 뒤늦게 후회하고, 기관에 맡겨진 아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아이를 찾긴 찾았는데, 법적으로 어머니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딸을 내줄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슬피 울면서 경찰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요즘에는 이혼을 하면서 자녀를 상대에게 떠넘기려고 합니다. 죄 중에도 부자‧형제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천륜을 어기는 죄는 범해서는 안 됩니다.

2. 신들린 딸을 사랑한 이방 여인과 그들을 사랑하신 주님

어느 날, 예수님은 이방 지역인 수로보니게의 도시들인 두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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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에 면한 항구 도시들로 로마의 식민지이었습니다. 시편 87:4에는, 두로가 다른 이웃 민족들과 함께 메시아 시대의 복을 나눈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메시아 시대의 복을 받는다는 예언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혹은 병과 귀신들린 상태에서 깨끗해지려고 갈릴리로 왔을 때에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에 오신 것도, 그 예언의 성취이었습니다.
그 때, 한 가나안 여인이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고대에는 두로와 시돈을 포함하는 모든 땅이, 가나안족들의 소유였으므로 가나안으로 불렸습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예수님을 약속된 주 다윗의 자손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메시아로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이 불쌍한 여인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 아니라, 비참하게 귀신들려 사람 구실을 못하는 자신의 딸 때문에,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실로 이 여인에게는 귀신들려 심신이 병약한 딸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이었고, 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고, 딸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이었습니다.
딸이 쓸모가 있거나, 장차 기대할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딸은 거의 치유가 불가능한 병약함 때문에, 제 앞가림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쓸모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딸의 문제와 고통과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애물단지인 딸을 끔찍이 사랑한 훌륭한 어머니이었습니다. 말이나 마음으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첫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딸을 고쳐 주는 것을 자신의 인생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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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삼고,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신들린 딸로 인해 말로 다할 수 없는 심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백방으로 수고하고 노력한 끝에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점은 그녀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에 믿음이 생겼고, 그 즉시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와 간청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7:25에는,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둘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끈질긴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딸을 고쳐 달라고 애절한 심정으로 호소했을 때, 예수님은 들은 척도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라면서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딸을 위한 여인의 절규에 대해,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게다가 사랑의 중개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제자들은, 그 불쌍한 여인을 귀찮아했습니다. 예수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의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몰인정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집요하게 매달렸고, 결국 주님 예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셋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귀신들려 병약하여 별 쓸모가 없는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이 존엄한 사랑은, 예수님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사실상의 거절을 하셨을 때, 그녀가 한 행동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철석같이 믿고 찾아와서 호소한 여인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려 병약한 딸을 고치기 위한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거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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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절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모욕을 느낄 수도 있는 거절의 말씀을 하셨을 때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겼고, 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 특히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넷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분별없는 사랑이나 맹목적인 사랑, 본능적인 사랑이나 이기적인 사랑 때문에 자녀를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여인에게는 모독으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분노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대단히 놀라운 지혜로 응대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옳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특권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스러기 은혜를 원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은, 예수님을 주이신 메시아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일에 이 여인이 예수님을 딸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주이신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면, 항의나 원망을 퍼부으면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주 예수님을 통해 딸만 치유될 수 있다면, 자신이 개로 취급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귀신들려 병약한 딸은,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면서 애를 쓰고, 어디서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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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적인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신들려 병약한 딸을 고칠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 있고, 끈질기고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랑이 있고, 게다가 자신을 주 곧 메시아로 믿는 여인을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녀의 딸도 사랑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시되 그녀의 믿음이 확고해지도록 시험하시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여인의 호소를 들으셨을 때에 한 말씀도 대답하시지 않았고, 잠시 후에 거절의 말씀을 하셨고, 그 후에는 모욕을 느낄 수 있는 거절의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믿음은 흔들리기는커녕,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의 표현이 강해질수록, 주 예수님께 대한 그녀의 믿음도 더 강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도, 그대로 믿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여인의 호소를 들으시고, 즉시 해결해 주시는 대신에, 그녀의 모범적인 모성애와 믿음을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끈질기고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받는가를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특히, 그녀의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애완견이건 아니건 간에 개로 비유되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한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셋째, 예수님은 여인의 딸을 직접 대면하시지 않았지만, 메시아적 권능의 말씀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시편 33:9을 보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107:20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유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어머니인 여인의 타의 추종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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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는 존엄한 사랑도, 사랑에 따른 목적의식도, 끈기도, 한결같음도, 지혜도 신들린 딸을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사랑의 주 예수님만이 그녀의 딸을 치유하셨습니다. 그 주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와 성결한 삶과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주님은 주님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고,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자녀를 주님 예수께 인도하는 것보다 더 큰 자녀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3. 맺음말

살아가는 동안 많은 문제와 고통을 통해 성장해야 할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인물로 만들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희생적 사랑과 끈질기고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랑을 해야 합니다. 또한, 주 예수님을 믿되 자기 부정과 끈기와 한결같음과 지혜로 믿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 사랑 중 사랑은 영생의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사랑을 자녀가 안다고 한들 얼마나 알겠습니까? 이런 설교 말씀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보다 더 깊고 넓게 알고,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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