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고향순례(故鄕巡禮)

함창석
  • 1448
  • 2020-05-04 19:23:28
역사고향순례

시인/ 함창석 장로

4월 29일 점심 식사 후 몽골선교사 백낙현, 윤향숙 부부를 동반하고 태기산 탐방 길에 올랐다.
둔내를 가기 위해 영동고속도에 올라 횡성휴게소를 지나면 현천이 나온다.
현천은 우리 부부가 학교에 근무할 때 결혼을 하였고 아들이 잉태한 남씨네 집이 있는 곳이다.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두 집 중 아랫집에서 월세로 살 때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이...

둔내 IC를 나와 화동 태기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군창 터 유물이 나온 둔내 중고가 있다.
태기산 밑 화동리는 벼화 자와 마을 동을 쓰는데 벼농사를 일찍이 지었던 것 같다.
양구두미로 오르며 6번국도 옛길은 그래도 포장이 되어 있기에...
고갯마루에는 간이휴게공원이 있어 들려 칡을 갈아 만든 차를 한잔씩 들고...
주인과 대화중에 나와 용띠 동갑내기로 고향이 화동이라 하였다.
내가 70년대에 총각교사 시절 화동 덕성학교에서 3년 간 근무 하였다고 하니 더 반가워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승용차로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기에...
주인장의 말에 안심이 되어 출발을 하였으나 비포장도로가 조금은 부담이 된다.

산 중턱에 오르니 포스코 마크가 있는 풍력발전기 세 날개가 돌아가고 소리도 요란하다.
잠시 머무는 갓길 장소가 있어 사진도 찍고 쉬면서 설치된 바람개비 등
안내판을 보며 주변에 있는 난과에 속하는 보라 꽃, 뱀 딸기 노란 꽃도 보며 즐겁다.
정상 1261m라고 안내된 전파중계소는 아직도 멀리 있어 다시 출발을 한다.
윤선교사 내외는 원주에서 산 적이 있지만 태기산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 고마워한다.

한참을 지나니 1960년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산지개발정책을 펼치며
이주하였던 주민들의 자녀들을 위한 태기분교 터가 보이기에 차를 세우고 들린다.
군 미필자들과 재소자들을 동원하여 개발을 하는데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그들에게는 면제와 감형혜택을 주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정책이었다고...

태기분교 터에는 작은 역사기념관이 있고 운동장은 큰 나무들이 서 있다.
횡성군에서 탐방 길을 정비하며 예산을 드려 그런 대로 잘 정비해 놓았기에...
지나는 길에는 다람쥐도 눈에 띠고 멀리 도망도 안 가고 귀엽다고
다람쥐 움직이는 모습 사진을 여러 장 찍어가며 윤 선교사는 감탄을 연발한다.

다시 출발하여 정상에 점점 다가오니 몇 대의 차가 보인다.
탐방 길을 걷는 등산객들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차만 간이주차소에 서 있다.
나는 곧 바로 중계소를 들려보고 싶어 조금은 가파른 길을 차를 몰고 오른다.
아이고! 어쩐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고 사람도 없으니...
문 앞에서 비탈로 올랐다 핸들을 완전 꺾기를 두 세 번 하고 겨우 차를 돌려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이 가파르게 느껴지나 속으로 기도를 하며 간이주차장에 오니
마음이 놓이고 전망대에 올라 멀리 치악산 비로봉도 보이고 풍력발전기도 모두 보인다.

4시가 넘어 배가 조금 출출하여 아까 칡차를 팔던 데 감자전이 생각나
선교사 내외에게 부치기 한판을 들자고 하니 부부들도 배가 고팠던 지 좋다고 한다.
우리는 올 때와는 다르게 국도, 지방도를 이용하여 원주로 돌아가기로 하며...

우리 고향은 태기산성 샘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주천강가에 자리 잡고 있다.
둔내를 지나 안흥을 지나 강림 쪽으로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태버린 내 고향이다.
이왕 이곳에 온 김에 우리 고향을 들려 유적과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며...
안흥시장에 도착하여 매스콤을 많이 타 유명해진 심순녀 찐빵을 한 박스 사고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내 고향 강림 가천으로 향한다.

나의 태버린 고향은 함씨들이 몇 집 살지 않으나 500년 이상을 내려온다.
고향 땅이 있어 나도 사후에는 여기에 묻힐 것이라 말하며
장애인 부부로 살아가던 작은 어머니마저 별세하여 빈 집이 된 곳에는
배나무 흰 꽃, 복숭아 분홍 꽃, 명자나무 붉은 꽃들만 예쁘게 피어나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는 진소 삼형제 바위도 있고 강원 관찰사 송강 정철 시비도 있고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살았던 운곡 원천석 선생이 학생을 가르쳤다는 각림사 비도 있고
태종 이방언이 다녀갔다는 기념비 주필대 훗날 태종대로 불리면서 내려온다.
이방언은 왕사이었던 스승 운곡 원천석을 찾아 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방언에게 거짓으로 방향을 가리켜 나중에 왕임을 알고 소에 빠져 죽었다고...
노구소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태종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가를 말해주듯...

주천 강을 따라 신라 박혁거세 무리에게 쫓겼다는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의 무리들이
이곳 강림에 머물렀는지 청동 검과 거울이 출토되어 오랜 역사를 추정하게 한다.
당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태기 무리 선발대가 춘천 맥국 쪽으로 향하다
강성해진 신라 박혁거세 무리에게 항복하고 충성을 맹세한 맥국 왕의 배반으로 인해
태기산 쪽으로 들어와 산성을 쌓고 수십 년 간 항거를 하며...
화성, 병지방, 어답산, 갑천, 신대, 봉명 등 관련 지명을 남겨 오늘 날까지 남아 있다.

안흥초 100주년을 맞아 행사 준비를 하는 총동문회장 김세영 사장
고향 후배가 운영하는 진소매운탕에 들려 어탕칼국수 한 그릇씩 들고 돌아오는 길
윤 선교사 내외는 오늘 하루가 너무 좋은 추억이 된다고 고마워한다.

몽골신학교 학장으로도 수고하고 있는 백낙현 선교사는 신학교운영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후원회를 통한 모금 독려 차 선교여행 중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몽골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무기 연기되는 바람에
한국으로 우선 들어와 대기 중에 있으니 많이 답답하던 차라고...
오늘 태기산 탐방과 일정은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며 다시 한 번 더 문자를 보내온다.

<2020. 4.29. 오후 1시- 7시 고향 태기산을 중심으로 순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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