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현종서
  • 1898
  • 2020-05-15 08:38:32
그런데 과학적 진리가 다르고 철학적 진리가 다르며
영적인 진리가 다르다. 이것을 우선 쉽게 구별해서 보면 자연세계의 진리와 정신 또는 인격세계의 진리와
영적 세계 의 진리가 다르며,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영적인 세계속에 철학적인 세계가 그 일부로 있고 철학적인 세계속에 과학적인 세계가 그 일부로 있다.

칼 야스 퍼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과학에 앞서 철학은 인간이 잠깨는 곳에 나타나는 법이다.
Karl Jarspers: Vor aller Wissenschaft tritt sie auf, wo Menschen wach werden.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의 피조물인 인간도 세상도 바로알지 못한다. 피조물은 결코 창조주를 그의 수하에 둘수 없는 것이다. 그 진리들을 아는 수단도 같지 아니하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과학이나 철학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러한 길도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할 수 도 있을 수도 있으나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목표와 길은 다르다.

그런데 신학자들이 왜 철학자들의 길을 가면서 철학자들에게 배우려 할까? 과학적 신학이나 철학적 신학이 있다고 말하는 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진정한 신학자의 길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자기처럼 자기제자들을 단순한 과학자, 철학자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신학은 교회의 학문이라는 말을 귀넘어 듣지 말라. 성경의 계시를 믿지 않으면 아예 교회의 문턱에도 들어갈 수 없으며 아예 신학의 길에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믿음과 게시의 영으로 깨닫게 되는 영적 진리를 버리고 인간의 피조성, 그의 인성의 타락과 전적부패를 믿지 아니하면서 어찌 신학을 한다고 하는가?

자기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면서, 자아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회개를 모르면서 나 역시 교회의 일원이라 말할 수 있는 가? 믿음의 길에 들어서긴 하였었는 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사야 했던 그리스도를 어디에 팽개치고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고 다시 세속주의의 가치관을 쫓아 앞장 서 나아가려 하는가?

철학적 진리는 때로 비과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초과학이요. 영적 진리는 때로 비과학이나 비철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초과학적, 초 철학적인 것이다.

과학적인 진리로 철학적인 진리를 또 철학적인 진리로 영적인 진리를 다 해설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소위 영적인 지도자들은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여기 고하와 서열이 분명히 존재 한다.

이쯤 이야기 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들은 예수 한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세속에서 잘나가는 사람들 흉내를 그리 열심히 내고자들 하는 지 ---

영적 생명을 소생시키기고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가치와 그 취득방법을 열심히 배우며 따라 가는 까닭이다.

감리교도(교역자 포함)들은 기독교의 근본을 더 깊이 그리고 더 확고히 더 철저히 그 핵심을 지키는 넓은 외연으로 지금도 살아계신 그리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쫓아 사는 일에 더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지혜의 근본이시고 하나님의 얼굴이시다.

그리스도는 학문과 전통을 따라 오시기 보다는 생생한 삶의 현장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의 도전과 개척의 삶의 현장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경건의 실천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은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드리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휫필드의 야외설교와 감리교회 순회 전도자들의 속회 설교에서 은혜받은 초기 미국인들, 그들은 미국에 Great Awakening의 영적 부흥을 가져 왔고 미국인 삶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그뒤로 그들의 삶의 뿌리였던 이 청교도 정신을 훼손하며 공립학교에서 십계명을 가르칠 수 없게 하고 세계 각종 이교적 문화를 받아들여 잡탕국가를 만들어 놓았고 나라 또한 쇠퇴를 거듭했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타락의 본성을 긍정하지 않고 그 인성에 기쁨을 주는 철학을 계속 발전시킨 결과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가 되게 되었다. 성서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로서 인간의 더 많은 지식에 의해서 변화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의 진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개 될 수 없다.

웨슬리 당시에도 영국사회는 이성을 존중하는 이신론이 기승을 부렸었다. 그러던 중에 그 잘난 지성의 전당 옥스포드 대에 성경벌레, 규칙쟁이들이 홀리 클럽을 만들어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를 썼고, 후일 하나님께서 그 멤바들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영적 각성과 죄 회개의 대부흥운동을 가져오게 하였다.

오늘날 신학계에서 근본주의자들이라 부르며,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자하는 자들에 대해여 비난하고 조롱하려는 제잘난 무리들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그 근본주의자들(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특이한 근본적 주장-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몸의 부활, 승천, 재림과 심판-을 믿는 자들) 또는 넒은 의미의 복음주의자들을 택하시고 크게 쓰시는 것이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 것이다.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다른 구주가 필요없고 오직 그 그리스도를 이 시대에 오는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고 변증하는 일 만 그에게 사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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