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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집안의 탕자
엄재규
- 1139
- 2020-05-20 19:08:34
(눅 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 두 아들⇒ 에서와 야곱, 가인과 아벨, 성경에서 2는 분리의 숫자임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 아버지의 유산을 조기에 상속함, 자기의 분깃을 챙겼으며 소유에 대하여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동,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그는 재물을 인생에 중심으로 촛점을 두었음. 먼 나라는⇒ 이방,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며, 낭비와 허랑 방탕은⇒ 돈을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물질에 초점을 둔 상태이고 이를 쾌락의 계기로 삼았다고 볼수 있음.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 흉년⇒ 요셉의 때, 성경에는 애굽의 7년 흉년 등 여러 흉년의 예표가 있음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 들⇒ 광야 시험의 장소, 돼지⇒ 이방인의 문화에 속함, 유대인에게는 이를 치는 게 수치에 해당함.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 쥐엄 열매로 돼지와 먹을 것을 경쟁, 사람의 위치에서 짐승과 대응하는 위치임, 유대인에서 이방인의 위치에서 떨어진 상태, 돼지의 사료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음.. 굶주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스스로 돌이켜, 이게 사람에게는 힘듭니다. 이게 성경적인 회개이며 이는 어떤 죄로 인한 어떤 행동에 대한 후회 혹은 반성이 아니라, "나는 죄인이다." 라는 상태에 대한 인정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양식이 풍부함. 배고품과 환란 가운데 회개하는 계기가 되나 모두 회개하지는 않음. 당연히 마귀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 내가 일어나⇒ 내가 죄인의 상태를 인정하면 현재의 상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죄는 하늘에 대해 짓는 죄이기도 합니다. 이 죄는 돈을 허비하거나 허랑방탕한 죄라기 보다는 "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를 잊은 죄입니다.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 아들이라 불리는 상태가 바뀌어야 함을 인정, 이름이 바뀌어야 하는데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예표가 있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알기만 해도.....
(20a)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 일어나서⇒ 영적인 죽음과 영적인 잠에서 일어나서, 돌아가리라⇒ 돌아가야 합니다. 회개로 인한 최종 선택은 '하늘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20b)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의 오랜 기다림, 측은히 여겨⇒ 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죄인에 대한 긍휼함.. 이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인간을 버리지 않은 하나님의 심정, 달려가⇒ 아버지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회개 이전에 손을 내미는 아버지,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 아들이 이르되⇒ 우리 자신이 자신의 입으로 죄를 고백하는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에 너무 뻔뻔하고 죄송한 입장을 말함. 사람의 죄는 역시 하늘에 대한 죄가 됩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 (돌아온 아들의 지위 회복) 좋은 옷을 입히고⇒ 계시록에서 흰옷 입은 장로들이 나타나죠. 손에 가락지⇒ 바로가 야곱에게, 다니엘에게, 에스더서의 모르드게에게 끼워준 인장, 발에 신을 신기라⇒ 전신갑주에서 이는 평안의 복음이며,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 (돌아온 아들에 대한 잔치를 배설) 살진 송아지, 먹고 즐기자⇒ 육신은 먹는 것으로 위로와 즐거움이 있음.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둘째 아들의 상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 혹은 영적 죽음에서 깨어나 생명을 얻은 상태임,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잔치에 참여한 사람이 다 즐거워함.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집에 가까이 와서 잔치 소리를 들음.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죄인의 회개가 있으면 연주와 춤이 있는 잔치가 하늘나라에서 배설됨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 물은대⇒ 집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되나, 종에게 묻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잔치를 배설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같이 즐기면 되는겁니다.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 돌아온 건강한 둘째아들을 맞아들임을 기뻐하고 잔치를 배설하는 그의 아버지의 심정을 전함. 건강한⇒ 육신이 상하지 않음에 충분히 기뻐하는 아버지, 물론 둘째 아들은 혼도 역시 회개를 통해 건강해짐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 노하여⇒ 형은 동생의 무사한 귀환을 기뻐하지 않음. 아버지가 권해도 막무가내로 듣지 않음.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 명을 어김이 없거늘...⇒ 맏아들의 오류... 소극적 계명의 준수로 의무를 다했다고 여김. 어쩌면 바리새인들의 통상적인 태도이며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을 기뻐하지 않음. 아버지의 심정을 모름... 염소새끼와 같은 물질에 초점, 부잣집에서 잔치를 배설한다고 이에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비난이며, 타국에서 동생의 생활 환경을 확인하지 않았고 그에 대하여 적절한 소명을 듣지도 않았기에 거짓에 기초한 인격 매도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이 아들이 돌아오매⇒ (27절) 당신의 동생과 당신의 아버지에 배견하여 볼때 이는 제3자에 대한 호칭이다. 그의 관심은 물질에 있기에 혹시라도 자신의 몫이 줄어들게 우려된게 아닌가?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 내 것이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의 몫이 다 그의 것인데 송아지 한 마리에 분노하는 그는 맏아들인가? 형인가? 소유 to have 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to be 의 문제, 소유 to have 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 to remedy 의 문제입니다.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죽었다가 잃었다가⇒ 돌아온 아들에 대한 기쁨,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한 기쁨. 회개에 대한 기쁨,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회개한 죄인에 대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은 가정 if이나 조건 conditionally이 아니며 마땅히 must be 해야할 바 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돌아온 죄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