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높이는 이들을 염려한다...

오재영
  • 1856
  • 2020-05-28 01:40:24
안자지어(晏子之御)

춘추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 '안영'과 그의 마부에 관한 일화다.
안영은 중국 제(齊)나라의 탁월한 재상으로 그의 지혜로운 정책으로 제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한 사람이지만 정작 그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겸손(謙遜)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키가 8척이나 되는 건장한 마부가 있었다. 어느 날, 안영이 급하게 볼일이 생겨 마차를 준비시켰다. 마부는 신이 나서 행차준비를 했다.

"물럿거라! 제(齊)나라 재상(宰相)께서 행차하신다..."

자신이 고함칠 때마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려 길을 터주는 모습에 으쓱해진 그는 더욱 목을 꼿꼿이 세우고 한껏 우쭐거리며 소리를 높여지나간다. 그는 특유의 오만함으로 목청을 높여 외쳤다. 그날따라 마차는 마부가 사는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이러한 남편의 그 모습을 그의 아내는 사람들의 뒤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다. 그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들어온 그에게 마부의 아내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당신의 주인은 키가 여섯 자도 못 되는 분이지만 제나라의 정승으로 그 이름이 천하에 높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항상 스스로 몸을 낮추고 계십니다.

그에 비하면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고 그분의 마차를 모는 마부이면서 스스로 우쭐하여 거만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길을 비키며 허리를 조아리는 것은 당신의 호령과 위세가 아닌 마차위의 정승께 예(禮)를 갖추는 것입니다. 아내의 지적에 마부는 즉시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날부터 목소리와 태도가 한껏 진중해졌다.

얼마 뒤 마부의 태도가 전과 달라진 것을 안 재상 안영이 그 까닭을 물은즉 아내의 충고를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 듣고 재상 안영은 크게 기뻐하며, ‘자네는 내가 수백 권의 책(冊)을 읽고 깨달은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칭찬하며 이처럼 변한 마부를 중용해 종국에는 그도 마부에서 대부(大夫)에까지 이르러 존경받는 생을 살았다.

성직(聖職)은 욕심낼 분야가 아니다.

요즘 감리교단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의 계절이다. 우한코로나 사태의 질병으로 온 나라 안팎의 위기 중에서도 전례에 따라 차기 연회를 섬기려는 감독들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자천타천으로 책임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2년간 교단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할 이들이다. 이들이 기억할 것이 있다. 그 직분마다 모두가 소중하기에 성직에는 하위직도 고위직도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직은 함부로 넘겨다 볼일이 아니다. 안 맡는 것 보다는 맡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직분을 맡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안 맡겨주면 불평하고 맡겨주어도 감당 못할 직분이라면 차라리 맡지 않음이 낫다. 그것은 감당하지 못하면 추천한 이나 받은 이나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기독교대한감리회가 135년 동안 존재하고 있는 신앙의 토양은 한때 불교와 유교가 융성했던 역사의 토대위에 있다. 과거 그 융성에 비하여 지금은 유명무실한 그 역사가 한편으로는 우리를 두렵게 한다. 순교의 피를 흘리고 전국 산천마다 사찰을 세워온 1천500여년의 불교가 그 망하는 기간은 고작 15년이 걸리고, 뒤를 이어 등장한 유교(왕으로부터 정승, 판서, 지방향반까지 모두신자)가 허물어지는 기간은 10여년이 걸렸다하지 않는가? 역사학자들의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13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전 국민의 18%의 어설픈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우리 기독교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가?...

지금도 무슨 명예감투에 그리 한이 맺혔는지, 집착에 매달리고 있는 이들... 좁은 땅 안에서 분수에 넘는 여러 연회를 만들어 직분의 명칭도 연회장은 절대로 안 되고, 감독이라는 호칭을 생명줄 인양 고수하며 자주색 가운위에 문양까지 새기고 어떤 이는 상등병 계급장까지 붙이고 당나라 황제 곤룡포마냥,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는지 이제는 너무 많으니 줄이자는 이는 없고, 거창한 선교란 이유를 붙여 하나를 더 만들어놓았다. 이모두가 선교의 대상들에게 “치기만만(稚氣滿滿)하게 보이는 유치함과 부끄러운 모습들이 아닌가? 지금도 그 많은 감독 중에 “이게 뭡니까?” 하는 감독 하나 없는지, 그리 말 했다는 소식 들은 적 없다.

세상술수를 교단 안에 도입하는 사람들...

그동안 교단 안에 갈등이 일어날 때 마다 뒤에서 공모하고 모사를 꾸며 교단의 위상을 실추시킨 이들이 이제는 자기가 교단을 염려하고 위하여 희생을 하듯 등장하여 순진한 이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도 주님께서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에서 행하는 언행심사(言行心事)는 모두가 사안에 따라 본인의 생명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룩한 자리에 함부로 준비 없이 주구(走狗)노릇도 마다않고 등장함으로 사역을 비롯하여 지나온 생 자체를 접어야했는가? 모두가 은혜의 위치를 벗어나 우쭐댄 대가요 아픔들이다.(삿9:7~21).

나는 진리를 추구하는 영적구도자는 태생적(胎生的)으로 고독해야함을 믿는 사람이다. 그것은 목사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엄위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자신에게 말씀하심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신탁(神託)받은 이들에게는 그분의 곁에 머물다온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체취와 기운이 배어 있다. 사역의 현장에서 이러한 이를 만남은 그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와 관계된 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幸福)이다.

부디 엄위하심으로 부터 받은 선한선택으로 각자 직분맡은 이들마다 앞선 이들의 실패를 교훈삼아 희생과 헌신의 섬김으로 주님 앞에 기억되는 흔적들이 있기를 기도드린다.

이전 박영락 2020-05-28 준엄한 "법"이 정치꾼들에게 휘둘리면 생기는 일
다음 임재학 2020-05-28 왕이 부패하면 시민이 부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