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자유: 복음 선교를 위한 종노릇
최세창
- 68
- 2025-08-18 14:55:52
<고린도전서 9:19-23>
19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1. 시작하는 말
가장 중요한 기본권은 자유입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인간은 아무도 박탈할 수 없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믿는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 전쟁의 지도자이었던 헨리(Patrick Henry)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하여 항복 쪽으로 기울던 분위기를 일신하였고, 결국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사르트르(Sartre, Jeon-Paul)는 “사람은 자유이다. 사람은 자유 그 자체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자유가 그토록 소중하다면, 주 예수님이 주신 영적 자유의 소중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2. 복음 선교를 위한 종노릇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적 자유를 가지고, 다시는 종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한 바울 사도는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울 사도는 당시에 매우 많은 특권이 보장된 로마 시민권까지 있는 당당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가 자진해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다는 것은, 놀라운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원한 영적 자유를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종으로서의 삶을 산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이유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자기의 이해관계를 따져 가면서 자기 사람이 되게 하려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자진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랑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해관계를 따라서 자기 사람이 되게 하려는 담임 목사와 부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교인들은 바울 사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정치계와 경제계와 교육계와 체육계와 문화계 등의 모든 세계에서, 이해관계를 따라서 자기 사람이 되게 하려는 사람들도 바울 사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실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종다운 종이었고,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목자다운 목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랑의 종노릇이야말로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길입니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사랑의 종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드만(C. R. Erdman)은 “바울은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만한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온갖 필요한 양보를 서슴지 않았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가족과 친척, 친지와 동료와 이웃을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복음을 좇아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그들을 믿음의 형제로 얻기 위해 얼마나 양보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적 자유가, 사랑의 종노릇을 위한 자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구체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이자 랍비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이, 동족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목적으로 유대인과 같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또, 서원한 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고,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머리를 깎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유대인과 같은 행동은 유대인의 죄악이 아닌 관습과 전통에 국한된 것이며, 복음 선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대학생이 밤늦은 시간에 마지막 4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술이 많이 취한 한 승객이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자신을 보더니 손짓으로 불렀습니다. 가까이 갔더니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물었습니다. “학생, 이 지하철이 기름으로 가지요?” 대학생은 친절하게 “아니요. 전기로 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놀란 그 승객은 전철이 미아역에 도착하자 비틀거리며 내렸습니다. 친절한 대학생은 전철이 다음 역에 도착할 때 들린 안내 방송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번 정차할 역은 길음역입니다.”
그 대학생이, 잔뜩 술 취해서 전철을 탄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면, “이 지하철이 기름으로 가지요?”를 ‘이 지하철이 길음역으로 가지요?“로 듣고, 바른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바울의 선교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위선적으로 두 얼굴을 갖는다거나,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방법은 요즈음 말로, 누구하고도 어울릴 수 있는 경우이다. 자기의 견해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전혀 참을성이 없는 사람, 동정심이 전혀 없는 사람, 남의 정신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 등은 결코 목사나 전도자가 될 수 없으며, 심지어 벗도 될 수 없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대상자들과 같이 되는 식으로 선교한 것은, 어디까지나 각 사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전통이나 관습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배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같은 선교의 동기와 방법과 목적으로 율법 아래 있는 유대교인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방 세계인 길리기아 다소 출신인 바울은 이방 세계의 언어, 관습, 문화, 철학, 종교, 그리고 생활양식에 익숙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선교 활동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적절하게 활용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 자신은 주님 안에서 생사를 초월한 강한 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약한 처지와 약한 양심과 약한 마음 등에 대해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여 동정하고 이해하면서 보조를 맞췄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1:29 이하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한마디로,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몇몇 사람이라도 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자유자재로 선교 대상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서구 문화의 이대 조류인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능통한데다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확고하게 무장했기 때문에, 복음 전파를 위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도 적응하며 소통할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 선교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대상자들과 같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이해와 동정입니다.
끝으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 선교를 위해 모든 사람에게 종노릇을 하고, 그들과 같이 되는 삶을 사는 중요한 목적을 밝혔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위하여”의 헬라어 디아(διὰ)는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언행을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행하며 사는 것은, 복음의 은혜와 복에 참여하기를 열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27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도가 되기까지 했지만, 아직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완전한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도중에 버림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토로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매일매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언행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빌립보서 1:27 전반을 보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언행의 삶은 성령의 역사를 따름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얼마나 사랑의 종노릇을 합니까?
선교사들 중에는 선교지의 역사나 전통, 문화나 관습이나 생활을 미개한 것으로 묵살해 버리고, 자기 식이나 자기네 문화를 강요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선교사이기도 한 바울 사도는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종처럼 모든 모양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또는 사도인 자기 식을 고집하면서 선교하지 않았습니다. 선교 대상자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종노릇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세웠습니다. 자기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만들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회원 가입 문의→ (02)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